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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격 Nov 17. 2022

나는 직원들의 시기를 받는다

접수대

2022.11.17. 날씨 맑다


법원 내 보통의 평범하면서도 옹졸한 직원들은 나를 시기한다. 명분이 없기에 드러내 놓고 표출하지는 못할지언정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대중이 인식할 수 있는 표면적인 무기의 상징물이 없는 상태의 지혜로운 자들은 안타까운 운명에 처한다. 대중은 말로는 지혜로움을 높이 평가하며 자기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속물들에게 지혜를 강요할지언정, 겉으로 드러나는 상표에 약한 면모를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노골적인 속물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노골적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불편한 존재이다. 그들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지혜를 갖춘 자일 뿐더러 그들이 비판하는 속물 근성이 없는 자이기에. 마치 나의 존재만으로도 자기들의 속물 근성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차마 드러내 놓고 나를 비난하지 못한다. 나의 존재는 그들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논리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존재는 그들의 약점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존재를 선망하는 듯 선망하지 않고, 견제하는 듯 견제하지 않는 미묘한 정서를 내비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처세는 다음과 같다. 대내적으로 나는 나의 활동에 온전히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생산적인 일에 몰입함으로써 뜨내기들의 비생산적인 정치 공학을 나의 의식 속에서 몰아내기 위함이다. 대외적으로 나는 아는 듯 모르는 척을 하는 미묘한 정서를 내비친다. 그들에게 위협을 줌과 동시에 안심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협하기만 하면 그들은 정치 공학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들을 안심시켜주기만 하면 그들은 숙주에게 기생하는 생물처럼 의존하면서도 끊임없이 기어오르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 침묵 아닌 침묵을 하고, 경청 아닌 경청을 하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균형을 맞추어야 대중들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상황들이 내가 대부분의 직원들이 기피하는 협의이혼 접수실에 지원한 이유이다. 여기는 다른 부서와 공간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별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적어도 내가 소속된 법원의 공간 구성은 그렇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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