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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격 Nov 24. 2022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의 최후

2022.11.24. 날씨 맑다

협의이혼 접수 업무를 본 지도 이제 1년에 다 되어 간다. 이제 슬슬 다른 부서로 옮길 시즌이 되어 내부 인사희망원을 작성하다보니 과거의 추억(?)이 떠오른다. 몇 달 전의 일이다.


내가 소속된 법원은 적어도 협의이혼의 경우만을 떼어놓고 봤을 때 다른 법원들과 관할이 겹친다. 내가 소속된 법원이 비교적 규모가 큰 법원이기에 인력이 부족한 다른 시•군법원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그 지역의 법원과 우리 법원에서 같이 그 지역의 관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협의이혼을 하고자 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시•군법원이 속해 있는 지역에 살더라도 해당 시•군법원뿐만 아니라 우리 법원에 접수할 수도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관할이 겹치는 각 법원의 담당자들은 민원인들에게 관할의 선택권을 안내해줄 의무가 있다. 그런데 다른 시•군법원과는 달리 유독 xx시법원만은 남달랐다. 관할이 겹치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마음을 교묘히 조종하여 우리 법원으로 가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다른 시•군법원은 예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만 우리 법원으로 보내는 것과는 달리(이는 업무적인 정보가 부족한 시•군법원의 사정을 감안해봤을 때 내가 관대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xx시법원 협의이혼 담장자는 완벽 범죄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당사자들이 우리 법원에 접수하러 올 때 이에 대해 말을 안 하리라 생각하는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의 순진한 발상에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물론 그 당시 시점의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를 말한다).


법원은 기수제가 만연해있다. 직원들끼리 선•후배를 엄격히 따진다. 후배 기수에게 업무 떠넘기기, 후배 기수에게 애당초 업무 분장을 불리하게 설계하기, 후배 기수에게 불합리한 요구하기와 같은 갑질문화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들은 바로는 옥상에 집합을 했다는 소식, 폭언을 들었다는 소식, 정치질에 희생되었다는 소식, 사생활을 모조리 까발린다는 소식, 유언비어를 퍼트린다는 소식 등 끝없는 정보가 들려온다). 물론 개념 없는 후배(?)의 존재도 당연히 있다(어느 집단이든 빌런이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토록 장황한 설명을 한 이유는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께서 무려 나보다 선배(?) 기수였기 때문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기보다 선배(?) 기수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간 큰 후배(?)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이런 부조리한 문화에 무릎 꿇을 위인이 아니긴 하지만, 어차피 관할이 겹쳐서 우리 법원의 일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거 몇 건 처리한다고 무슨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며, 뜨내기들과 불필요하게 드잡이질을 하여 나의 품격을 훼손시킬 수는 없기에 모른 척하며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xx시법원에서 기어코 문제를 터트린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가 아닌 그를 보조해주는 운전 직렬 공무원께서(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멍청한 사람 한 명 때문에 편하게 돌아가던 시스템이 망가진 꼴이다).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를 보조하던 운전 직렬 공무원이 우리 법원의 협이이혼 업무를 담당했던 전임자에게 연락을 하여 적반하장으로 우리 법원에서 xx시법원으로 관할을 떠넘겼다는 식의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참고로 접수대에 앉아 있던 나와 해당 전임자는 단 한 번도 당사자에게 선택권을 빼앗은 적이 없다). 이에 격분한 전임자는 바로 나에게 연락을 하였고, 선을 세게 넘어버린 그들의 행태를 두고 본다면 도리어 정치질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나는 즉시 계장님에게 이러한 상황을 보고하였다(나는 당시 꼬리가 길면 잡힐 것이라고 판단한 그들이 먼저 선수쳐서 우리 법원의 협의이혼계를 빌런으로 몰아, 지금의 시스템을 고수하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였다). 이에 격분한 계장님은 그 즉시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에게 전화를 거셨고, 기세와는 달리 유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 법원 직원들은 단 한 번도 관할 안내를 실수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당사자들에게 이쪽이든 저쪽이든 선택하시면 된다고 안내합니다.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뚝.


… 뭐, 어찌됐든 의사는 전달되었으니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법원 사람들은 면전에서 다투기보다는 암중에서 다투는 습성이 있기에 과격하게 나가면 정당한 명분이 있는 자가 오히려 빌런이 되어 버린다. 계장님은 오랜 법원 생활에서 생존의 지혜를 터득하신 지혜로운 분이셨다. 이와 같이 유한 발언이었지만 내포된 동기에 대해 생각하는 게 습관화된 법원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를 공론화시켰던 그쪽 담당자를 보조하던 운전 직렬 공무원이 우리 법원에서 협의이혼을 담당했던 전임자에게 또 다시 멍청한 전화를 건 것을 보면 더더욱 분명해졌다. 비록 전임자의 혈압을 더욱 올리는 우둔한 발언이었지만(항상 인간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어떤 잘못을 저지렀을지라도 변명거리가 있으며 입을 쉬질 못한다). 가만히 있었으면 아직까지 xx시법원의 수작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을텐데, 한 사람의 우둔한 행동으로 인해 xx시법원 협의이혼 담당자만 아쉽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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