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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격 Dec 02. 2022

병 계장과 정 계장

2022.12.2. 날씨 맑다

병 계장과 정 계장, 서로 앙숙이며 서로를 혐오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둘은 닮아 있다. 표출되는 형태는 다를지언정 결핍 동기에 의한 인정 욕구가 그 정체이다. 병 계장은 내면의 결핍을 위악적으로 표출한다. 정 계장은 내면의 결핍을 위선적으로 표출한다(위선이라는 부드러운 표현을 썼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지질한 표출에 가깝다). 사람은 보통 자기 내면의 아름다움과 닮아 있는 자를 봤을 때는 호감을 느끼는 반면, 자기 내면의 혐오스러움과 닮아 있는 자를 봤을 때는 반감을 느낀다. 병 계장과 정 계장이 바로 후자의 케이스이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족 혐오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에게 혐오를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혐오하면서 자기의 내면을 끊임없이 학대하는 그들. 이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표출된다. 병 계장과 정 계장은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다른 법원 직원들에게 권력욕을 행사한다. 권력욕은 열등감의 대표적인 감정이다.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한 자가 그러한 감정을 품을 리가 있겠는가. 이미 존재적으로 온전한 존재급을 지니고 있는 자는 구태여 사회적인 직급이 크게 필요치 않은 법이다. 또한 둘의 행동 양상 중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무시하고,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견제한다는 것이다.


다만, 차이는 병 계장은 제법 똑똑해서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반면, 정 계장은 다소 멍청해서 사람들이 한심함을 느낀다는 정도랄까? 사람들은 위악적인 빌런에게는 두려움을 느껴 기피하고, 위선적인 지질이에게는 한심함을 느껴 기피한다. 느끼는 형태만 다소 다를 뿐 그들을 기피한다는 결과는 다르지 않다. 물론 일반적인 대중의 경우에도 위 두 유형과 같이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무시하고,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니 병들지 않은 인간은 거의 없다는 서글픈 결론이 나온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는 고만고만한 도토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병정’놀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주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와 같은 병정놀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얼마나 초라한 일인가. 법원이라는 조직만 떼어 놓고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하급 공무원들끼리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판사의 눈에는 얼마나 유치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겠는가. 판사들끼리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대통령의 눈에는 얼마나 유치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겠는가. 각국 정상들끼리 아웅다웅하고 심지어 서로를 죽이기도 하는 모습이 무한한 우주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무의미하고 초라한 일인가. 무한한 우주에서 먼지와 같은 크기의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보이지도 않는 미물들끼리 서로 우열을 가리며 진지하게 병정놀이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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