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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격 Dec 05. 2022

망상의 연쇄 작용, 환상 공동체의 실체

2022.12.5. 날씨 흐리다

혹시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나의 망상이 만들어내고 있던 왜곡된 세상은 아닐까? 물론 일부 명백한 사건의 경우에는 나의 추측이 맞을 수도 있다(더 엄밀하게 분석해본다면 구성원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맞다’고 약속해 놓은 룰에 부합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그 외 애매한 사건의 경우에는 오히려 나의 추측이 틀릴 가능성이 훨씬 크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히 했던 말과 행동, 태도들이 상호 영향을 끼쳐서 오해가 쌓였고, 불편한 관계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다. 쉽게 말해 서로 오해를 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뜻이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령 나의 모든 추측이 사실이라고 한들 그것을 맞췄다는 뿌듯함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나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무의미하게 소모할 뿐인 것이다(비록 이러한 점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멍청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을 보면 나도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낀다. 멍청이들은 도대체 왜 스스로의 지능을 키울 생각은 안 하고, 남들에 대한 끊임없는 불평불만과 세상에 대한 원망만을 늘어놓는 것인가).


-서로 험담하고 이간질하는 문화가 조성된다.

-조직 내 구성원 상호 간 불신이 싹튼다.

-누군가 나에 대한 알 수 없는 오해를 하고 나를 주시한다.

-나는 상대방의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의도를 추측하여 그를 경계한다.

-상대방은 그러한 나의 태도 변화를 보고 의도를 추측하여 나를 경계한다.

-상호 악감정이 쌓여 각자 자기의 의식 내에서 서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여기에 명백한 증거가 있을까? 사실 애당초 인간의 인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모두는 자기의 뇌가 왜곡시킨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단지 환상의 정도 혹은 왜곡의 정도가 심하냐 심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누군가의 어느 특정 환상에 대한 확신은 다른 이에게 전파되고, 그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 주게 된다. 설령 분별력이 뛰어난 사람이 그것의 허구성을 간파할지라도 누군가의 특정 환상에 대한 확신은 그에 상응하는 방어적 확신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것이 허구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서로를 불신하는 조직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면(물론 이 와중에도 선의 기운을 간직하는 강인한 자가 존재한다). 다만, 환상이 심한 사람일수록 구성원들 사이에서 빌런 취급을 받는 듯 보인다. 크게 보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지만.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 정도 되려나? 이런 이유로 환상의 방아쇠를 당긴 스타터를 잡아 족치고 싶지만, 그것을 역추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설사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 나아가 더욱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스타터를 찾아내고자 한다면 인류의 역사를 들춰보아야 하며, 인류의 역사는 허구적 스토리의 연쇄 작용이라는 당황스러운 결론이 도출된다(허구적 스토리의 연쇄 작용을 우리는 히스토리, 즉 역사라고 부른다). 결국 모든 것이 무의미하며 알 수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집단의 스토리 구성은 구성원들 각자의 스토리 구성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또한 어느 구성원의 스토리 구성은 다른 구성원의 스토리 구성의 밑바탕이 된다. 즉 어느 구성원이 스토리를 전파했을 때 그것을 들은 다른 구성원은 그 스토리에 자기의 스토리를 결합시켜 제3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런 식으로 구성원들의 스토리는 상호 매개체로써 기능한다. 모두가 환상을 주고받으며 쾌락 또는 스트레스를 주고받고 있던 것이다. 환상이 환상의 환상을 부르고, 환상의 환상이 환상의 환상의 환상을 부르며, 환상의 언어폭력 또는 환상의 언어유희는 끝없이 이어진다. 환상의 연쇄 작용, 허구의 순환 고리야말로 인간 세상에서 사교의 본질이며, 이는 한편으로 고통의 근원으로 작용한다(이런 이유로 사교적인 사람이 과연 행복할지는 의문이다. 그는 늘 허구를 경계하며 긴장된 채로 살거나 그 자신이 허구적인 사람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여기에 명백한 사실이 있는가? 가장 정답에 가까운 생각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인간은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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