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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격 Dec 08. 2022

인간 유형 총정리 - feat.법원 동기들

2022.12.8. 날씨 맑다

인격적 성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의 유형은 크게 성장지향형 인간과 안정지향형 인간으로 나뉜다. 안정지향형 인간은 크게 무시-안정형과 열등-기만형으로 나뉜다(참고로 나의 개인적인 기준에서 성장지향형 인간은 크게 무한성장형 인간과 균형지향형 인간으로 나뉜다). 내가 서두를 거창하게 장식한 이유는 내가 소속된 법원의 입사 동기들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다. 법원은 기수제가 만연해있다(어차피 9급이나 8급이나 7급이나 6급이나, 설령 5급 이상이라고 할지라도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인식은 사소한 차이라도 구별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동기, 즉 동일한 연도에 입사한 기수의 사람들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비록 입사동기간의 연대는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들끼리의 연대가 오히려 나에게 존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해로운 경우가 생긴다. 이것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 신중히 숙고하여 선택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최선은 성장지향형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차선은 안정지향형 인간 중 무시-안정형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안정지향형 인간은 사실 성장이 정체되어 있어 어느 정도 고여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서로 윈-윈 관계를 형성하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람 중에서도 무시-안정형 인간은 크게 해롭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우월성 추구 경향을 스스로 억제하여 설령 주변 사람이 성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 끌어내리려고 들지는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인간 유형이 있다. 바로 안정지향형 인간 중에서도 열등-기만형 인간이다. 인간 유형 중에서 가장 자기의 내면 성찰이 결여되어 있는 유형이다. 메타인지력이 결여 되어 있는 인간, 소위 ‘주제를 모르는 인간’을 말한다. 이 자는 우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인 우월성 추구 경향을 있는 그대로 분출한다. 비록 자기의 역량과 능력이 자기의 욕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이러한 종류의 인간의 첫 번째 타깃이 되는 사람은 안정지향형 인간 중 무시-안정형 인간이다. 메타인지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놀랍게도 자기보다 메타인지의 측면에서는 더 탁월한 인간에게 우월감을 느껴 그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자기가 분수껏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모르거나 혹은 회피하고, 그 상대방이 왜 자기 분수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의 두 번째 타깃은 성장지향향 인간 중에서도 마음씨가 따뜻하고 선한 기운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이 자와의 관계에서 자기가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자에게 접근한다. 그 후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갈취한다. 성장지향향 인간 중 따뜻한 편에 속하는 인간은 사실 위험의 감지와 비판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정의 세계관이 의식 내에 비교적 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한 인간을 가려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결핍이 심한 기생충 유형의 인간은 특유의 생존 본능으로 숙주 유형의 인간을 직감적으로 알아보고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고선 에너지를 갈취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기만책을 사용한다(피해자 코스프레, 가해자 코스프레, 가스라이팅, 정치 공학, 이간책, 자살 공갈, 조울증 협박 등). 이 자는 성장지향형 인간 중 냉철한 편에 속하는 인간에게는 애당초 다가가지 않는다. 그에게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자기의 존재가치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에 있는 입사 동기 3명이 각각 위 세 유형에 속한다. 1명은 성장지향향 인간 중 따뜻한 편에 속하는 사람, 1명은 안정지향향 인간 중 무시-안정형, 나머지 1명은 안정지향형 인간 중 열등-기만형. 나의 허용 범위는 세 유형 중 위의 2명까지이다. 나는 성장지향향 인간 중 냉철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이 성장지향형 인간임을 전제로 했을 때의 얘기이다. 만일 누군가가 상대방을 필요로 하여 접근한다면, 즉 상대방에게 결핍 동기로 접근한다면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가 매력이 없어 보인다. 자기의 에너지를 갈취할 위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자기보다 더 건강한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그 상대방을 괴롭히게 될 확률이 높다. 그 상대방에 대해 은연중에 열등감을 느껴 깎아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사랑을 갈구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기보다 더 탁월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필연적으로 이중잣대가 내재되어 있다. 비록 자기는 그것을 못할지라도 남은 그것을 해줬으면 하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중잣대, 일명 ‘내로남불’을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겠는가? 비록 자기가 이중잣대를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위화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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