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한 마리와 난쟁이 무리
거인은 고요하다.
처음엔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서 있을 뿐이다.
그 존재가
모욕이 되고,
공포가 되며,
부정의 대상이 된다.
난쟁이들은 모인다.
혼자는 작으니
무리를 이룬다.
작음은 죄가 아니나,
그 작음을 감추기 위한
집단의 크기는
폭력이다.
거인의 발끝을 향해
비난이 쏟아진다.
“너, 왜 그렇게 커?”
“너, 너무 조용해서 불편해.”
“너,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거인은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고발한다.
그 침묵이
난쟁이들의 불안을 흔든다.
“우리는 작지만 옳다.”
“우리는 약하지만 정의롭다.”
그 착각을 유지하기 위해
거인을 끌어내려야 한다.
그리고
거인이 입을 연다.
“닥쳐라, 이 잔챙이 새끼들아!!!”
이 말은 폭력이 아니다.
그건 오랜 참음의 단절.
존재를 설명하지 않겠다는 선언.
왜곡된 정의의 무효화.
그 말은
공격이 아니라 해방이다.
자신을 난쟁이의 거울 속에서
더 이상 왜곡하지 않겠다는
존재적 이탈.
“잔챙이”란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의식의 스케일이다.
질투로 뭉치고,
모욕으로 결속하며,
자기 열등감을 윤리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군중.
거인은 오만한 것이 아니라,
단독인 것이다.
그 단독을
군중은 배신처럼 느낀다.
왜냐하면
군중은 늘 함께여야
자기 존재를 느낄 수 있으니까.
“닥쳐라”는
말을 뺏기지 않겠다는 말이다.
더는 네들의 틀 안에서
존재를 교정당하지 않겠다는
거인의 언어 해방.
작다는 이유로
모였고,
모였다는 이유로
옳다고 착각하고,
그 착각을 위해
커다란 존재를 파괴하려 드는 자들.
그들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인 척한다.
그러니 묻는다.
진짜 거인은 누구인가?
고독하게 선 자인가,
함께 외친 자들인가?
그리고
그 군중의 외침은,
진심인가,
공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