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 역린을 건들지 말라
나는 시방 온화한 짐승이다
나는 짐승이다.
그러나 지금은 온화하다.
숨결은 가늘고,
눈동자는 투명하다.
그러나
거꾸로 난 비늘 하나,
그것은
내 기억의 검이다.
모두는 나를 쓰다듬는다.
내 등을 지나고,
내 꼬리를 어루만지며,
내 발톱에 입맞춤한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기다린다.
단 하나.
턱 아래,
그 거꾸로 난 단 하나의 비늘.
그것을 만지는 순간,
나는 나를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역린(逆鱗)
그것은 신체가 아니라
존재의 금기다.
그건 상처가 아니라
상처의 기억을 뽑아내는 장치다.
역린을 건드린 자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짐승이 되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 선택은 폭력이다.
그 선택은 복수다.
그 선택은
문명을 파괴하는 생명의 반전이다.
나는 평화를 믿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내가 스스로의 분노를 먹여가며
키운 환상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시방 온화한 짐승이다.”
그러나 시방(是方),
이 순간에만 그럴 뿐,
그 순간이 지나면,
나는 더 이상 온화하지 않을 것이다.
용은 신화다.
그러나 역린은
신화가 감당하지 못한 현실의 기억이다.
묻는다.
너는 지금,
그 비늘을 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비늘이 왜 거꾸로 났는지
묻고 지나갈 것인가?
왜냐하면,
역린은 거꾸로 났으나,
결코 잘못 나지 않았다.
그것은 경고다.
존재에게 침묵을 강요한 세계에 대한
마지막 이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