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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용의 역린을 건드려 세상이 파괴되다

용(龍)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 역린을 건들지 말라

by Edit Sage

나는 시방 온화한 짐승이다



나는 짐승이다.

그러나 지금은 온화하다.

숨결은 가늘고,

눈동자는 투명하다.

그러나

거꾸로 난 비늘 하나,

그것은

내 기억의 검이다.



모두는 나를 쓰다듬는다.

내 등을 지나고,

내 꼬리를 어루만지며,

내 발톱에 입맞춤한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기다린다.



단 하나.

턱 아래,

그 거꾸로 난 단 하나의 비늘.

그것을 만지는 순간,

나는 나를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역린(逆鱗)

그것은 신체가 아니라

존재의 금기다.

그건 상처가 아니라

상처의 기억을 뽑아내는 장치다.



역린을 건드린 자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짐승이 되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 선택은 폭력이다.

그 선택은 복수다.

그 선택은

문명을 파괴하는 생명의 반전이다.



나는 평화를 믿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내가 스스로의 분노를 먹여가며

키운 환상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시방 온화한 짐승이다.”

그러나 시방(是方),

이 순간에만 그럴 뿐,

그 순간이 지나면,

나는 더 이상 온화하지 않을 것이다.



용은 신화다.

그러나 역린은

신화가 감당하지 못한 현실의 기억이다.



묻는다.

너는 지금,

그 비늘을 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비늘이 왜 거꾸로 났는지

묻고 지나갈 것인가?



왜냐하면,

역린은 거꾸로 났으나,

결코 잘못 나지 않았다.


그것은 경고다.

존재에게 침묵을 강요한 세계에 대한

마지막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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