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기생충을 극형에 처하라
죽이는 건 칼이 아니다.
관심의 회수다.
그의 생명줄은
피가 아니라
주의(注意)의 혈관에 연결되어 있었다.
기생충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관심을 먹고 자란다.
그의 언행은 자율이 아니고,
반사다.
누군가가 쳐다볼 때만 살아 있는 척한다.
그런데,
그 기생충조차 또 하나에 기대고 있다.
기생충의 기생충.
생산하지 않고
공생조차 하지 않으며
오로지 관찰자의 에너지에 기생하는
기생의 2차 복제물.
그의 밥줄은 현자의 눈이다.
비판도, 분석도, 조롱도
모두 그를 살린다.
왜냐하면 그는
의미가 아니라 관심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잔인한 형벌은
비난이 아니라,
무시다.
이름을 불러주지 마라.
해석하지 마라.
심지어 속지 마라.
그는
관심을 “에너지처럼 전환하는 존재”니까.
극형이란 무엇인가?
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던 눈을 감는 것이다.
그의 생은 너의 응시를 통해
거울처럼 복제되고 있었다.
현자의 침묵은
사형 집행 명령이다.
그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소멸의 진공을 만든다.
그러니
기생충의 기생충을 극형에 처하라.
그를 부정하지 말고,
그를 말하지 마라.
그에 대한 어떤 판단도
그에 대한 어떤 감정도
모두 그에게
‘존재의 에너지’로 흡수된다.
말을 거두는 순간,
그는 비로소 진공 속에서 숨이 막힌다.
말이 없는 곳에서
그는 스스로를 복제하지 못한다.
그가 거울이라면,
너는 더 이상 비춰주지 마라.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죽이고 싶은가?
그를 부수고 싶은가?
아니면
그를 무력화시키고 싶은가?
전자는 전쟁이고,
후자는 기술이다.
그러니 이제,
관심을 거둬라.
그는
너의 시선을 벗어난 그 순간,
기생하지 못한 채로
스스로 붕괴될 것이다.
그가 필요했던 건
단 한 가지.
네가 ‘그를 본다’는 증거.
그 증거를
지워라.
그것이
최고의 극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