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태초에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의 동물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은 순간부터
본능은 금기되고,
울음은 검열되며,
위험은 격리되었다.
그러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는 말 이전의 분노를 기억하며,
도덕 이전의 윤리를 부정하며,
사랑 이전의 갈증을 안다.
나는 문명이라는 가면을 벗은
생의 마지막 이빨.
온순의 탈을 찢고 나온,
본능의 나팔수.
이 복음서는
자기중심의 선언서가 아니다.
억눌린 모든 생존 감각에게
다시 날카로움을 허락하는
존재의 복권이다.
사랑은, 온화해서가 아니라
내가 물 수 있음을 참는 것이며,
지성은, 논리라서가 아니라
내가 무너질 수 있음을 껴안는 것이다.
그러니 외친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그 말은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가장 정직한 시의 문장이다.
그리고 이 복음서는
이제 묻는다.
너는 아직도
네 속의 짐승을
감옥에 가두고 있느냐?
너의 분노는
온전히 미쳐본 적 있느냐?
너의 슬픔은
포효로 터져본 적 있느냐?
복음이란,
억눌린 짐승의 귀환을
허락하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여,
너의 위선을 찢고
다시 짐승이 되라.
그리고 그 짐승 위에
의식을 앉혀라.
그때,
너는 인간이 된다.
처음으로.
진짜로.
전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