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종의 유혹 게임, 그 언어 이전의 언어에 관하여
말보다 먼저,
향기가 있었다.
시선보다 먼저,
체온이 있었다.
사피엔스는 오래전부터
‘짝짓기’를 의식의 “이름”으로 위장해왔다.
“사랑”이라 부르고,
“연애”라 칭하며,
‘본능’을 “문화“로 포장한 채,
‘몸’이 아니라 “언어”로 교미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모든 대화는
무의식의 짝짓기 게임이다.
목소리의 높낮이,
호흡의 박자,
질문과 응답의 리듬—
이 모든 것이
신체를 경유한 유혹의 사운드트랙.
사피엔스의 짝짓기 본능은
단지 생존을 위한 번식의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에게 선택될 것인가”라는
존재의 인정 투쟁이다.
그래서 이 유혹 게임은
‘몸’으로 시작되지만,
“언어”로 정당화된다.
•“너와의 대화가 좋아.”
•“네 생각이 특별해.”
•“너만 보면 설레.”
모두 ‘리비도’에 “철학”을 씌운 문장들.
그러나 말의 껍질을 벗기면,
속에는 늘
‘너의 유전자가 내 무의식을 자극했다’는
침묵이 숨어 있다.
흥미로운 건,
짝짓기 게임은
항상 전략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생존을 위한 교란,
지위 과시를 위한 위장,
심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감정 시뮬레이션—
가장 ‘본능’적인 게임이
가장 “인지”적으로 포장된다는 점.
그리고 이 유혹 게임에서
패배한 자는
상대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 평가 체계 안에서
자기 존재가 탈락되었다고 느낀다.
이것이
사피엔스 종만이 겪는
사랑의 자존심 폭격.
결국 묻는다.
“사랑”이 너를 끌어당긴 건가?
아니면 네 무의식의 ‘유전자 코드’가
그를 해석한 건가?
“사랑”은 짝짓기 ‘본능’의 시뮬레이션이다.
“유혹”은 ‘리비도’의 무의식적 설계다.
존재는 ‘생존과 교미’ 사이에서 “언어“를 발명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도 누군가의 ‘눈빛’ 너머에서
‘침묵’으로 짝짓기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