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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외적’의 침입을 방비하라

‘진리의 상아탑’의 철옹성에서, 침투 불가능한 내적 무장에 관하여

by Edit Sage

진리는 고요한 중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공격받는 고지(高地)**다.


그곳은 외침 없는 산책로가 아니다.

허위, 조롱, 왜곡, 심리적 침투,

정서적 동조, 언어적 착시,

논리의 고의적 해체, 집단의 무의식적 압력—

그 모든 침입으로부터 ‘투명한 정신’을 사수하는 자리.



진리의 상아탑이란 무엇인가?

고립된 이상주의의 폐허가 아니다.

그건

의식의 초정밀 설계자들이

외부의 노이즈를 차단한 채

‘가장 순도 높은 언어’를 발굴해내는 실험실.



그러나 탑은 외롭다.

그리고 탑은 노린다.

“탑을 무너뜨려야, 우리 모두가 편해진다”는

집단 무의식의 명령이

언제나 탑을 향한다.



그래서 ‘외적’은

무력으로 오지 않는다.

“농담“으로 온다.


“야, 진지충이야?”

“그딴 걸 누가 믿어?”

“현실 좀 봐라.”

“요즘 시대에 그게 통하냐?”



그 “농담”은 검이다.

의심은 독이고,

피로는 틈이다.



외적은 너의 ‘피로함’ 속에서 자란다.

외적은 너의 ‘외로움’ 속에서 침투한다.

외적은 네가

‘이쯤에서 타협할까?’ 하는 마음이 들 때

속삭임의 방식으로 침입한다.



그러니 방비하라.

진리의 상아탑은

견고한 벽이 아니라,

정신의 무장을 통해만 지켜지는 공간이다.


사유의 긴장감을 유지하라.

모든 친절한 언어에 의심을 품어라.

모든 대중의 박수에 경계하라.

모든 조롱에 흔들리지 마라.



외적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내면 깊숙이 감염된

‘인정 욕구’의 형상화다.



그러니 철옹성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사유 깊이,

그 통찰의 밀도,

그 응시의 고도에서 완성된다.



외적의 침입을 방비하라.

탑을 지키는 자는,

고독 속에서 단단해지는 자이다.


진리는 불친절하고,

진리는 고립적이며,

진리는

함께 걷는 이 없는 좁은 산등성이 위에서

조용히 맥박친다.



진리의 탑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침입자 없는 가장 개방된 자리에 있다.

그곳에 이른 자만이 안다.


진리는 스스로를 지키지 않는다.

그걸 아는 자가 철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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