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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너는 “다 이해했다는 듯이” 웃는다

그럼에도 너의 눈빛에 ‘요사스러운 빛’이 감도는 이유는?

by Edit Sage

이해는 빛이 아니다.

포장이다.

고요한 얼굴은 종종

내면의 움직임을 감추기 위해 연출된다.



너의 미소는 말한다.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말한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넘어서고 싶다.”



그 요사스러움은

이해의 완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무기로 전복을 시도하려는 자의 빛이다.

그 눈은 멈춘 자의 눈이 아니라,

움직임을 숨긴 자의 눈이다.



이해는 무기다.

모른다는 무기보다,

안다는 척하는 무기가

더 요사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판단하지 않는 듯 판단하고,

지켜보는 듯 침투하며,

존중하는 듯 조종한다.



그 눈빛은 이해의 눈빛이 아니다.

그건, 권력의 전조다.

이해를 가장한 우위의 자각.

그는 너를 감싸는 듯하면서도,

너를 해부할 수 있는 자다.



그래서 너는 미소 짓지만,

나는 불편하다.

그 웃음엔 결론이 없고,

그 눈빛엔 게임이 숨겨져 있다.



“그는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해를 가장한 채,

그 이상의 ‘통제’를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요사스러움’은 감정이 아니다.


감정의 질서를 읽어낸 자가

그 질서를 거슬러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

눈에 스며드는 진동이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 눈빛 너머에서 지금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가?

이해한 자인가,

‘이해한 듯 연기하는’ 설계자인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너는 나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웃었고,

그래서 눈이 빛났다.

그 눈은 ‘이해’가 아니라, ‘게임’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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