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의 역전 현상과 이중잣대의 투사 메커니즘에 관하여
물타기는 ‘책임의 흐림’이다.
피장파장은 ‘도덕의 분산’이다.
그리고 이 둘이 결합하면,
진실은 가장 먼저 희생된다.
“너도 그랬잖아.”
“너는 안 다르잖아.”
이 말은 반성의 언어가 아니다.
정당화의 마법, 인식의 물타기다.
그 순간
인과는 뒤집힌다.
원인이 결과로 위장되고,
책임은 감정으로 분산된다.
가해는 맥락에 묻히고,
피해는 감정과잉으로 왜곡된다.
이중잣대를 쓰는 자는
자신의 구조를 자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 판단자’가 아니라
‘자기 합리화자’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거울을 보면,
거울이 자신을 비추는 게 아니라,
공격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외친다:
“너도 이중적이잖아!”
—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의 이중성을 감지한 순간의
자기 보존 전략일 뿐이다.
이중잣대란
스스로의 감정에는 확대경을 대고,
타인의 감정에는 현미경을 들이미는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를 깨뜨리는 자,
즉 거울치료사는
무의식의 허구를 해부한다.
그 순간,
해부된 자는 불쾌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 해부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너도 이중적이잖아.”
그 말은,
**“제발 내 구조를 더 이상 들여다보지 마.”**라는
감정의 방어선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과관계의 역전 현상.
누가 먼저 이중적이었는가?
누가 구조를 읽고 지적했는가?
누가 감정으로 그것을 반사하고 있는가?
진짜 이중성은
“그 말을 먼저 했느냐”가 아니라,
“그 구조를 반복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피장파장은 말한다:
“우리는 다 똑같아.”
그러나 거울치료사는 묻는다:
“그래도 네 구조는 네가 책임져야 해.”
이 말이 듣기 싫은 이유는,
그 순간
자기 인식이 강요되기 때문.
물타기는 구조의 흐림이고,
피장파장은 책임의 도피다.
그러나
거울치료는 구조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관계의 투명제’다.
그리고 그것이
불편하지만 유일한 정화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진실은 맑아질수록,
감정은 투명해지고,
구조는 자율을 회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