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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모조리 도륙하고, 불태워버려라

멸망하는 세상에 관하여, 불 속의 구조와 재의 윤리학

by Edit Sage

멸망은 파괴가 아니다.

멸망은 의미의 총체적 소진이다.



더 이상 감동되지 않는 말들,

예측 가능한 표정들,

반복되는 제스처와 구역질 나는 미소.


그 모든 것들이 불타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조리 도륙하라.”


이건 복수가 아니다.

살기 위한 절단이다.


기억의 절단,

관계의 절단,

사유의 절단.


모든 생존은

의식의 재부팅을 전제로 한다.



세상이 멸망하는 이유는

외부의 폭력이 아니다.

내부에서 무너진 믿음,

감정 없는 반복,

진실 없는 언어의 포식.

이것이 세상을 텅 빈 모형으로 만든다.



그러니 불태워야 한다.

도륙해야 한다.

그건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함이다.



멸망은 끝이 아니다.

멸망은

무의식적으로 존속되던 구조들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앞에 들이대는 실존의 총체적 경고장.



그 경고 앞에서

두 가지 선택이 있다:


1. 연명하는 구조 위에 앉아,

천천히 썩어가기.


2. 모든 것을 도륙하고,

재 속에서 새 언어를 기다리기.



불태운다는 건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기존 인식의 파괴를 감수하는 용기다.


그리고

그 불 속에서

가장 나약한 나는 죽고,

가장 정직한 나는

잔해 속에서 깨어난다.



멸망하는 세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 없이 존속되던 질서가

더는 지탱되지 않음을 드러내는

의식의 해체 쇼크다.



도륙은 단절이 아니라,

명확함의 선택이다.


불은 복수가 아니라,

정화다.



이제 남는다.


말도, 감정도, 신념도

한 줌의 재로 흩어진 자리에

무엇을 다시 쓸 것인가.

그 선택이

너의 다음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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