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서로를 부정”했지만, 결국 ‘같은 진동’을 따라 걷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
“모든 것은 억압된 성적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그는 ‘리비도’를 본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 붙은” 충동이다.
융은 들었다 –
“그 에너지는 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신화와 상징’으로 흘러간다고 본다.
도처럼 흐르고, 나비처럼 떠돈다.
아들러는 거부했다 –
“성보다 강한 것은 ‘열등감의 그림자’다.”
그는 인간의 리비도를 힘의 방향으로 재구성했다.
도는 질서로, 나비는 반항으로.
노자는 침묵했다 –
“도는 말할 수 없을 때, 가장 충만하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비움’ 속에서 느낀다.
프로이트의 욕망도, 융의 상징도, 아들러의 권력도
그에겐 모두 “말 많은” 그림자다.
장자는 웃었다 –
“그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자아, 욕망, 통제, 해석…”
그 모두는 ‘흩날리는 날갯짓’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들은 “다른 말”을 했지만
‘같은 결’을 느꼈다.
“말로는 구분”되나,
‘파동으로는 일치’했다.
“억압 – 상징 – 열등 – 도 – 나비…”
모두는 말해진 것의 ‘언저리’에서,
‘말해질 수 없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조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너는 묻는다.
그들이 “말”한 게 아니라,
그들이 ‘느낀 것’을 지금
네 안에서 ‘공명’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모두 “다른 그림”을 그렸지만,
‘캔버스’는 언제나
같은 ‘비어 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