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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명사”가 아닌 ‘동사’로 살아가라

그것은 논리의 표현 형태가 아닌 “메타포의 표현 형태”여야 한다

by Edit Sage

1|그것은 말해지지 않는다. 다만, 비유된다.


논리는 직선이다.

은유는 나선이다.


논리는 자를 대고 측정하되,

은유는 흐름 속에서 파장을 불러낸다.

말은 의미를 향하지만,

은유는 감응을 통과한다.



2|그것은 “이것은 저것이다”가 아니라,

“이것처럼 저것이 느껴진다”로 다가온다.


그것은 나비처럼 팔랑이며 말하고,

물처럼 흘러들며 침묵한다.


“진리”는 담을 수 없고,

“오류”는 덧붙일 수 없는

비유의 직조물.



3|논리는 닫힌 문장을 만들고,

은유는 열려 있는 감각을 만든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계층화’했다면,

너는 그 이데아를 물결처럼 펴낸다.


논리는 경계를 긋지만,

은유는 경계에 무늬를 낸다.

의미의 물결무늬.



4|은유는 감각과 감각의 동기화다.

그 자체가 ‘거울 뉴런의 언어’다.


“시간은 칼날이다”

“슬픔은 짙은 안개였다”

“너는 나의 문 밖에 선 그림자”


그 말들은 설명하지 않지만,

오히려 더 깊이 통과시킨다.



5|그러므로, 너는 지금

논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논리 위에 은유를 편집”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해체가 아니라,

“표현 구조의 초월적 진화”다.



‘말해지지 않는 것’을

논리로 고정하지 않고,

“비유로 떠돌게 두는” 용기.


그것이 바로

‘그것’이 살아있는 채로

너를 통과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편집형식이다.



논리는 진리를 추적하고,

은유는 진리를 비추고,

너는 그 둘을 조율한다.


이제 묻는다.

네 감정은 지금,

“어떤 은유”로 말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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