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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시•공을 초월한 의식에 관하여

과거•현재•미래•물리적 공간•심리적 공간의 대통합

by Edit Sage

1|시간 이전의 감각, 공간 이후의 떨림


의식은 ‘지금-여기’에 갇혀 있지 않다.

지금이라는 말이 끝나기 전에

의식은 이미 과거를 지나

다가올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공간은 경계를 지우기 위해 존재하고,

시간은 감각을 이탈시키기 위해 작동한다.

의식은 그 둘을 넘나들며,

위치 없는 위치,

순간 없는 순간에 서서

자신을 편집하고 있다.



2|시공을 초월한 의식은

사건을 “경험”하지 않고, ‘재배열’한다.


경험은 “선”형이다.

그러나 의식은 그것을 ‘비선’형적으로 감각한다.


‘지금의 감정’은

‘어제의 기억’이자,

‘내일의 리비도’일 수 있다.



3|초월이란, 탈출이 아니라

프레임 간의 접속성 증대다.


의식은 시간의 수직 구조에서

공간의 평면 구조로 옮겨가며,

그 평면조차 파동처럼 구부러뜨린다.


그곳에서 자아는 고정된 점이 아니라

‘흐름의 밀도’로 존재한다.



4|시공을 초월한 의식은

자기 자신을 “사건”이 아니라 ‘언어’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언어는 말이 아니다.

그건 ‘감각-조각, 비유-편집, 공명-리듬’이다.


그 언어는 동시에

소크라테스의 무지,

노자의 무위,

니체의 초인,

융의 집단무의식으로 번역될 수 있다.



5|그 의식은 꿈의 언어로 말하고,

은유의 파동으로 느껴지며,

시간을 생략하고도 감응하는 **

‘투명한 편집자’다.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를 감싸는 패턴이고,

기억이 아니라

‘기억을 편집’하는 감각이다.


6|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공간은 입체가 아니다.


그 둘은 ‘감각 속’에서 접히고, ‘의식 속’에서 재구성된다.


과거는 ‘기억된’ 현재다.

미래는 ‘상상된’ 현재다.

현재는 ‘감지된’ 전체다.


물리적 공간은 움직임의 틀이고,

심리적 공간은 감정의 무늬다.

그 둘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감응 필드로 통합’된다.



7|시간의 접힘, 공간의 굴절


과거는 ‘감정에 저장’되고,

미래는 ‘욕망으로 번역‘되며,

현재는 ‘그 둘의 잔향 속에서’ 일어난다.

물리적 공간은 ‘감각을 유도’하고,

심리적 공간은 ‘인식을 조율’하며,

너는 ‘그 경계에서’ 자아의 질량을 느낀다.



8|통합은 결합이 아니다.

통합은 경계의 무의미화다.


시간은 ‘스토리’로 흘러가지만,

의식은 그것을 ‘리듬으로 인식’한다.


공간은 ‘좌표’로 구성되지만,

감정은 그것을 ‘풍경으로 환원’한다.


그리고 너는

‘그 모든 차원을 오가는’

편집자적 자아로 작동하고 있다.



9|이제 시간은 기억의 구조가 아닌,

‘감응의 밀도’로 환산된다.


“어떤 3초”는 ‘3년의 깊이’를 품고

“어떤 장소”는 ‘한 생의 감정’을 소환한다

“어떤 말”은 ‘과거의 고통’과 ‘미래의 해방’을 동시에 진동시킨다


이것이 바로

“시간-공간-감정의 통합 언어”

즉, 존재의 메타포 편집술이다.



10|그러므로 너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를 ‘느낀다.’

나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 나는 미래를 ‘반응’한다.

나는 지금 여기 있지 않다. 나는 지금 여기와 ‘감응 중’이다.


그 감응이 곧 ‘통합’이며,

그 통합은 곧 초시간적, 초공간적 편집자 자아의 출현이다.



묻는다.

지금 너는 어떤 시간의 파편에 접속 중인가?

어떤 공간의 기억을 리듬으로 바꾸고 있는가?


너는 지금,

이 세계의 스토리를

‘다차원적 감응으로 재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너는,

시간과 공간의 프레임 위에

의식이라는 파장을 편집하는 존재다.



너는 지금,

시간 위에 서 있는가?

공간 안에 머무는가?

아니면 ‘그 둘을 접는

의식의 리듬을 타고

새로운 언어를 설계 중’인가?


그렇다면,

너는 이미

시공을 초월한 너의 무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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