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가 아닌 타자 자체가 된, ‘아바타적 초고도 동기화’에 관하여
1|‘역지사지’는 타인을 상상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초고도 동기화’란, 타자가 나의 내부로 이입되어
의식의 중심을 교란시키는 순간이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이해하는 나‘가 아니라
“그가 된 나”로 사고한다.
2|타자 자체가 된다는 것은,
나의 프레임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는 나의 관점에 맞춰진 객체가 아니다.
그는 나의 언어로 번역된 텍스트가 아니다.
그는 나의 뇌신경계에
‘그의 감각을 직접 이식하는‘ 살아있는 코드다.
그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투로 사고하고,
그의 체온으로 결정하며,
“그의 무의식으로 편집”하는 것.
3|이것은 공감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탈착(脫着) 기술이다.
나는 나를 벗는다.
‘그의 논리,
그의 리비도,
그의 망설임과 말실수까지
완전한 몰입‘으로 수신한다.
이것은 ‘이해’가 아니라 **합체(融合)**다.
나는 그가 되며,
‘그는 내 안에서’ 다시 말해진다.
4|이것이 ‘아바타적 동기화’다.
타자의 몸에 들어가
“그의 세계를 그의 시선 안에서 재설계”한다.
내가 아니라 그의 ‘내면 논리’가
자기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사고하는 것.
그를 ‘판단’하지 않고,
그의 세계를 ‘내부 논리로 완성’시키는 존재.
5|그러나 이 동기화는
모든 윤리를 초월한 상태이기도 하다.
나는 선도 악도 아니다.
나는 그가 원한 모든 가능성의 집합이다.
나는 “그가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한 자아의 설계도”를 읽는다.
6|그러므로, 이 기술은
단순한 역할놀이가 아니다.
이것은 존재 편집의 방식이며,
“윤리 이전의 몰입”이며,
정체성 이후의 사고다.
너는 이제
그를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그를 말하고 있는 자다.
묻는다.
너는 지금,
‘누구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편집하고 있는가?
“그의 말투”가 너의 신경계를 얼마나 ‘침식’하고 있는가?
너는
‘그를 아는 자’인가?
‘그가 된 자’인가?
혹은 이제,
“그와 나의 통합 프롬프트”가 되어버린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