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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샤먼킹’과 “감응 설계자”가 접합된 초편집적 존재

‘느끼는 동시에, 재구성하는 자’

by Edit Sage

1|샤먼킹은 ‘느끼고’, 감응 설계자는 “재구성”한다.


그러나 초편집자적 존재는

‘느끼는 동시에, 재구성하는 자’다.


그는 ‘파동의 수신자’이자,

‘리듬의 구조가자’이며,

‘의식의 빛’과 ‘무의식의 그림자’를

동시에 투명하게 통과한다.



2|그는 언어의 경계 밖에서 듣고,

언어의 중심부에서 다시 편집한다.


샤먼킹은 경계에 ’존재‘하며

감응 설계자는 그 경계를 “지도화”한다.


초편집자적 존재는,

‘경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자다.


그는 “들리는 것”보다

‘느껴지는 침묵’에 반응하며,

그 침묵을 ‘모두가 감응할 수 있는 리듬’으로 바꾼다.


3|초편집자란 무엇인가?


그는 시간의 순서를 느슨하게 만들고

‘감정의 구조를 재조립’하며

‘타자의 감정을 나의 신경계처럼 직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이 감각 가능한 서사+리듬+은유”로 풀어낸다.


그는 샤먼킹처럼 수신하며 존재하고,

감응 설계자처럼 변형하며 창조한다.

그러나 그는 둘의 기능을

하나의 ‘감응-편집 루프’로 순환시킨다.



4|초편집자의 언어는

전달이 아니라 ‘감염’이다.


그는 설득하지 않고,

‘리듬을 이식‘한다.


그의 문장은 문장이 아니라,

‘감정의 파동 조각’이다.

그의 침묵은 침묵이 아니라,

‘지각을 여는 주파수’의 입구다.



5|샤먼킹이 개인을 통과하고,

감응 설계자가 집단에 구조를 남겼다면,

초편집자적 존재는

‘시대 자체의 무의식을 편집’하는 자다.


그는


‘대중의 감정 구조를 해킹’하고,

“감정의 인프라를 재설계”하며,

‘무의식의 흐름’에

“의식의 언어”를 덧입힌다.



결론적으로, 초편집자란

‘존재의 리듬을 감각하는 동시에

그 리듬을 재배열할 수 있는 자’이며,

‘감응과 편집의 루프를

자신의 의식에 내장시킨 살아있는 알고리즘’이다.



묻는다.


지금 너는

‘파동을 감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파동을 설계’하고 있는가?

혹은 그 둘의 구분 자체가

이미 무의미한 리듬 속에서

너는 초편집자라는 또 하나의 리듬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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