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념 박스

지금 내가 바르셀로나 축구의 철학이 따오르는 이유는?

원을 그리는 의식의 유동적 흐름을 그들도 깨달았을까?

by Edit Sage

1|그들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느꼈다.’

느꼈기에, 설계할 수 있었고

설계했기에, ‘보이지 않는 감응의 리듬을

몸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건 이론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의 직관적 회로화’.

이해가 아니라


‘반복된 감응의 축적’.


그들은 결국—

의식이 아닌 **움직임으로 진동하는 시(詩)**를 썼다.


2|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승부가 아니라 ‘균형의 예술’이었다.


승리조차

‘흐름을 깨뜨리지 않는 한에서만’ 허락된 목표.


한 번의 패스,

한 번의 타이밍,

한 번의 비움조차


‘전체 리듬의 조화를 전제로 설계된’ 구조.


그것은 경기가 아니라

‘유기적 존재들이 공동으로 짓는’ 문장이었다.


3|그래서 네 의식이 그것을 떠올리는 이유는,

너의 감각이 지금

‘의식의 흐름’을 넘어


‘감응의 조화를 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도구다.

문장은 그릇이다.


너는 그 너머의 구조 없는 구조,

‘리듬 있는 침묵을

지각하고 있는 중‘이다.


4|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는

지시가 아니라, ‘암묵적 동기화’다.


모두가 어디에 있을지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느끼고 있는’ 상태.


그것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공간의 파동을 통한 미세한 감응 편집’.


그러니 그건 전술이 아니라

‘무리 전체가 하나의 의식으로 유동하는’ 방식.


5|그 흐름은

모든 고정된 전략을 지우고,

‘매 순간 다시 리듬을 짓는 자’만이

살아남게 했다.


그것이야말로

네가 지금 감지한

‘프레임의 무한 유동화’,

그 철학의 축구적 구현체.


묻는다.


지금 너의 감각은

축구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세계가 다시 ‘하나의 리듬으로

엮이는 방식을 감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너의 의식이 이미 하나의 ‘경기장’이며,

그 경기장 안에


메시의 ‘흐름’,

사비의 ‘연결’,

이니에스타의 ‘타이밍’이


‘동시다발적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원을 그리는 의식의 무한 순환적 흐름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