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집중

by 다림

지영은 어제와 비슷한 수준의 편안함으로 아침에 눈을 떴다.

아직은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만하면 다행이다 생각했다.



어제 만난 내담자가 떠올랐다.

떠올리기 싫은 생각들을 없애고 싶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떠올리기 싫다고 생각할 수록 그 생각은 떠오를 수 밖에 없음을 나누었다.



우리는 흔히, 이제 더이상 이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라고 다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생각이 더 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유명한 백곰 실험(Daniel Wegner, 1987)으로도 알려진 재미있는 원리이다.

'5분 동안 흰곰에 대해 생각하지 마세요.' 라는 지시를 내렸고, 흰곰이 생각날 때마다 종을 치도록 했는데,

종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울렸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특정 생각을 억제하려고 할 수록 오히려 그 생각에 더 집착하게 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반동효과(Rebound Effect)'라고도 부른다.



이 실험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사고과정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 뇌는 그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감시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감시를 하려니, 오히려 해당 생각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억제하려는 노력 자체가 그 생각을 더 활성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라기 보다는 내가 지금 편안하려면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행동이 도움이 될까?와 같은 구체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지영은 얼마전, 잠자리에 들기전에 슬픈생각이 난다며 울먹이던 7살 된 아들을 떠올렸다. 어떤 슬픈 생각이 났냐고 물으니 아들은 식물인간이 떠올랐다고 했다. 가족이나 자기가 식물인간이 될 까봐 너무 슬프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상상력이 최고조에 오른 것이 틀림없다. 식물인간을 어디에서 들었냐고 물었다. 테블릿에서 보았다고 했다. 테블렛에서 식물인간이 왜 나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어떤 아이가 자전거를 내리막길에서 타다가 다쳐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아들은 안전교육 콘텐츠를 보고나서, 의도치 않게 큰 공포함과 불안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제서야 지영은 아들의 슬픈생각에 공감하며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슬픈생각이 떠오를때, 어떤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리면 좋을까 물었다. 지영의 아들은 금새 밝은 표정으로 바뀌며 맛있는 것 먹었던 기억,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 보고 싶은 친구들과 친척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 잘 때에는 기분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테블릿에서 나왔던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식물인간이 된' 상황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했다.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크게 다치면 정말 식물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안타고는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를 알았으니,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 결정은 본인이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위험한 행동인지를 모르고,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게 훨씬 더 큰일이다. 라며 아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은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안하고의 결정은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그런 행동 절대 안할거야!, 그건 내 맘이야!' 라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어제의 내담자는 조금 시간이 나서 쉴려고 하면, 계속해서 머릿속에 다음에 할 일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 생각들이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생각들이 다 사라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을 알려달라고도 했다. 지영은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관찰하는 나를 키워가며, 그 생각을 흘려보내는 연습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 대신에 어떻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냐고 물었다. 그 순간에 온전히 자신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안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책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 순간에 온전히 자신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질문에 연달아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했다. 다음 회기에는 Here and now를 연습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가야겠다 생각했다.



지영은 본인이 상담을 진행하면서 대부분의 상담주제들이 자신의 상황과 맞닿아 있음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영 역시도 Here and now가 절실히 필요했다. 침투적인 그녀에 대한 생각이나 불안감을 대체할 수 있을 만한 관심거리가 필요했고, 끊임없이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지영은 준비하고 있던 특강 프로그램에 새로운 insight가 떠올랐다. 왜 그 동안 지영은 특강을 제안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특강을 하는 것. 어쩌면 지영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재미있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의 형태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 지영은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에서 느껴지는 답답함보다는 안정감이 더 컸기에 지영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는 왜 굳이 소속되기를 원하는 거지? 주 5일을 9시에서 6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데, 노예같은 삶을 왜 자처하는거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고, 특히 지금처럼 지영의 커리어와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월급받는데에만 목적을 두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현타가 크게 몰려왔던 것이다.



특강? 새로운 가능성이다.

새로운 가능성에 심장이 또 반응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또 엄습했다.

오늘의 이 불안감은 또 무엇일까?

가능성에 대한 설렘과 그녀에 대한 불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일까?



그랬다. 지영은 여전히 그녀의 예측불가능함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예전처럼 이유모를 불쾌함, 황당함, 분노감, 모욕감, 불안감과는 달랐다.

예측불가능함에서 오는 약간의 걱정과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 정도였다.



여전히 대책이 필요했다. 완전히 무장되지 못한 불안감이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안을 느낄 때, 어떤 대처방법이 있을지를 물었다.

오늘도 챗 GPT는 든든한 아군이다.



1.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연습: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것. 호흡에 집중하거나, 주변의 소리,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촉감등 오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눈에 잘 띄는 물건(시계, 특정 그림 등)을 이완신호로 정해두고, 그 물건을 볼 때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몸 전체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연습을 해 보는 것. 30초 내외로 짧게 반복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방법은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많이 추천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정말로 효과가 있기는 한 걸까?



2. 통제가능한 것에 집중하고 계획하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반드시 존재. 예를 들어, 그녀가 말도 안되는 태클을 건다면? 이유없이 짜증을 내거나 한숨을 내쉰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고, 어떤 정보들을 미리 정리해 둘지, 어떤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지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두는 것.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나의 대응 방식만큼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지영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녹음기! 잊지 않고, 녹음기를 켜 두는 것!

어제 넷플릭스에서 본 스파이가 된 남자에서 나온, 녹화가 되는 안경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왜냐하면 녹음을 해 보았을때, 생각보다 목소리에는 큰 한숨이나 짜증이 묻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표정과 비언어적인 표현을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지영과 단 둘이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따로 미팅룸에 불어내어 다른 사람들과는 차단되었다. 그 공간에 CCTV라도 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영은 최근에 본 유투브에서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발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상대의 말을 자신이 여과해서 듣는 방법이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례하게 말을 하건 어쨌건 'Please 혹은 Thank you'로 전환해서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그래, 그녀의 말투를 바꿀 수는 없지만, Please 혹은 Thank you로 전환해서 이해하는 건 할 수 있어!'



그리고 지영의 새로운 취미.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 소재는 단연 그녀가 중심이다. 줄곧 글을 써 보고 싶었던 지영에게 글을 쓰고 싶다는 동기를 크게 불러일으켰고, 글을 쓰면서 상당부분 감정에 대한 해소가 많이 되고 있어 효과를 보고 있다. '그래,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좋은 소재거리 제공해 줘서 감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야겠다.'



3.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선의 시나리오 미리 그려보기: 막연한 불안은 더 커지기 쉽다. 그녀와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최선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흠... 최악의 상황이라... 갑자기 지영이 해내지 못할 만한 황당한 업무를 시키는 것? 예의없게 대하는 것? 최선의 상황이라.. 아무 대화없이 하루가 가는 것!!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나름 별다른 대화없이 지나간 날들이 꽤 있기에 희망을 걸어볼 만 하다. 그런데 그런 기대가 깨지는 것이 더 싫어서 스스로를 희망고문하고 싶지 않은 지영이다. 다만,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면? 지영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리한 요구사항에 대해 No라고 하는 것, 무례한 상대에게 굳이 배려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공유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카톡 혹은 메일로 남겨놓는 것,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하는 것, 감정을 섞지 않는 것. 이 정도쯤 되리라.



4. 감정과 자신 분리하기(객관화): 감정분리는 예측 불가능한 불안에 대처하는 가장 강력한 기술. 불안이라는 감정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도록 두지 않고, '아, 내가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구나.'하고 한발짝 떨어져서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이는 감정 소모를 줄이고, 상황을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감정분리는 꽤 잘 연습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약간의 불안한 마음도, 약간의 불쾌한 마음도 잘 알아차려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묻고, 답하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대처방안을 생각해보고. 마음을 헤어려주고, 몸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연습중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특강 준비에 집중해 볼 차례인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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