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동네
어릴 때는 이 동네가 싫었다. 중학교 수학여행, 서울 시내를 누비던 고속버스 안에서 나중에 크면 반드시 서울에 와서 살리라 다짐했다. 인서울을 꿈꾸며 학창 시절을 열심히 공부했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 서너 곳에 수시원서를 넣었다. 합격한 대학도 있었지만, 결국 진학한 곳은 지방의 교육대. 그리고 교사가 되어 해남, 목포, 순천을 전전하다 결국 자리 잡게 된 곳은 다시 이곳, 나의 고향 광양이었다.
학창 시절 인서울을 꿈꾸었던 것도 잠시, 대학시절부터 내내 내 마음속엔 나의 고향 광양이 있었다. 비록 마을 전체가 8시만 되어도 깜깜해지는 시골이지만, 집 뒤에는 잘 관리된 도서관과 공원이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하천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깔끔하게 잘 조성된 도시이다. 시에서 지원되는 다양한 복지 혜택도 많아, 코로나 시기에는 재난지원금을 넉넉히 챙겨주는 정겨운 도시이자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도시라고 소문이 난 곳이다.
타지에 살면서 광양이 가장 그리울 때는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일 때였다. 광양에서는 겨울에 함박눈을 보는 것이 손꼽을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다. 한자로도 빛 광, 볕 양을 쓰는 것처럼 정말 따뜻한 도시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매화꽃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피는 이곳에서는 롱패딩을 꺼내 입고 운동을 나갔다가는 옷 안에 땀이 차는 일이 흔하다.
내가 이곳에 돌아온 이유는 날씨만 따뜻해서가 아니다.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원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사는 친구와는 따로 카페나 밥집을 가지 않고 공원을 걸으며 자연을 구경하는 것이 우리의 데이트 코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힘들어 휴직을 냈을 때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데리고 함께 백운산을 올랐다. 조금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자연이 나와 친구들의 놀이이고, 문화이다. 주말에는 부모님의 농장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개와 고양이와 밭에서 뛰어노는 조카들을 보는 게 나의 낙이다. 흘러가는 사계절을 느끼며, 하늘을 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건강해짐을 느낀다.
때로는 붙어사는 부모님과 투닥거리기도 하고, 도시의 편의시설이 부럽기도 하지만 어디를 가도 나는 다시 광양을 그리워할 것을 알기에 내가 다시 돌아온 이곳에 새로워진 나의 마음을 담아 정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