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산책

걷기 좋은 우리 동네_ 광양의 산책길

우울감이 나를 잠식시키고 한없이 나라는 사람이 불행하다 느껴질 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도피처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 게임, 영화가 될 수 있을 텐데, 나에게는 그런 도피처가 바로 산책이다. 내가 우울할 때, 힘들 때 도망치는 우리 동네 산책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나만의 히든플레이스인 우산공원이다.

어린 시절에는 비둘기 집이 있어 죠리퐁을 들고 항상 출근도장을 찍었던 곳.

비 온 뒤 세상은 유난히 맑고 쨍한 자신의 색을 뽐낸다는 걸 느끼게 되었던 곳.

가족들과의 추억이 정말 많이 담긴 이곳이 집 근처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타지에 살 때면 우산공원의 풍경을 생각하며 러닝머신을 타기도 했으니 우산공원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리라.

깊은 서러움에 잠겨 산책을 할 때면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나무들이 나를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랄까.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을 때면 눈을 감고 산책을 즐겨본다. 바람을 느끼고, 모처럼 광합성을 한다. 동백, 벚꽃, 철쭉, 라일락, 민들레… 다양한

풀꽃들과 솔방울을 야금거리는 청설모와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자연에 빠지다 보면 머릿속 가득 차 있던 고민거리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교토여행에서 철학자의 길을 걸은 적이 있다. 나에게는 우산공원이 나를 철학자로 만들어 주는 길이다.

두 번째, 광양읍 서천길이다.

유난히 봄이 아름다운 서천은 벚꽃이 만개했을 때 꽃축제도 열리는 곳이다.

잔디를 뛰어노는 아이들과 떠다니는 비눗방울. 잔잔한 서천변을 배경으로 줄지어 피어있는 벚꽃나무들을 따라 걷다 보면 산책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이다.

낮의 서천도 좋지만 나는 밤벚꽃을 따라 걷는 서천의 밤산책을 더 좋아한다.

솜사탕인지, 팝콘인지, 또는 봄에 내리는 새하얀 눈인지,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새로운 감동을 심어준다.

시간을 잘 맞춰 걷다 보면 음악분수도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웅장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정겨워서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음악분수를 보며 들려오는 옛 음악에 추억을 떠올려본다.

세 번째, 도립미술관에서 버스터미널, 오일장을 지나 골목골목을 누벼본다.

간판만 보아도 세월이 느껴지는 오래된 건물들과 허름하지만 정겨운 옛 주택들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다.

그대로 멈춰버릴 것만 같았던 오래된 골목길에 카페가 들어서고, 도로가 새롭게 나는 모습을 보며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세월이 지나며 변한 모습을 찾아본다.

익숙했던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 산책의 묘미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정말 생소할 지도 모르는 우리 동네 광양의 산책길을 내 나름대로 적어보았다.

불행과 우울이 가득할 때는 이어폰을 꽂고 무작정 동네를 걸어보자.

너무도 익숙했던 일상의 풍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위로를 얻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