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생들이 모여 독서클럽을 만들었다. 21년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3년 차다. 첫 시작은 친구와의 대화였다. 휴대폰을 너무 많이 하니까, 독서모임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을 실행력이 좋은 친구가 나서서 멤버를 모집해 주었다.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지만 교류가 많이 없던 친구 2명과, 총대를 메준 친구의 지인인 간호사 1명, 초등교사인 나, 보건교사인 친구까지 5명이 그렇게 만났다. 93년생을 휴대폰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의미로 클럽명은 9해주3 독서클럽.
21년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줌이 일상이 되었던 해이다. 우린 비대면 독서모임으로 3주에 책 1권을 읽고, 날짜를 정해 줌에서 만났다. 독서모임의 큰 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책은 문학과 비문학을 번갈아가며 선정해야 한다. 둘째, 5명이 한 권씩 추천하고,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영화를 선정하여 본다. 이때 영화는 책과 관련된 영화 또는 너무 상업적이지 않은 독립영화로 한다. 셋째, 여름과 겨울 한 해에 두 번 비대면 모임을 갖는다.
독서모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책을 읽고 그냥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도 말이다. 1. 총평(작가의 문체, 등장인물, 책의 줄거리에 대한 생각) 2. 인상 깊은 글귀 3. 한줄평 4. 책 제목을 다르게 바꾼다면? 이 네 가지 질문의 답뿐만이 아니라 모임 하루 전에는 5명의 멤버들이 책을 읽고 생긴 질문을 하나씩 올려야 한다. 그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까지 생각하여 독서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까다로울지도 모르는 과제들이지만 이런 준비과정이 있기에 우리는 대화 속에서 때로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한 권씩 쌓아 올리다 보니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어느덧 40권. 그중에는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내 취향이 전혀 아닌 책들도 있고, 모두가 함께 머리를 쥐어짰던 어려운 책도, 베갯잇을 잔뜩 눈물로 적시게 만든 책도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그전에는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비대면 모임에서는 함께 책방을 방문하는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발견한 방명록에 감성 넘치는 글귀를 적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술이 없어도 밤늦게 책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혼자 할 때는 지치고 지겨울 때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때로는 일상에 치여 책을 읽을 여유가 없어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의사를 내비쳐도, 모두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적절한 책임감과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남들은 모두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는 것만 같고, 30대가 되었지만 이룬 것 하나 없는 초라한 나를 발견할 때, 독서모임에서 나누었던 책들과 그 값진 대화의 시간을 떠올린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꾸준히 함께하는 취미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