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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 Aug 16. 2023

구남친의 청첩장을 보았다.

행복해, 아니 행복하지마.

 구남친의 청첩장을 보았다. 말 그대로다. 3년 전, 밤낮으로 나를 울게 만들고 일 년 정도 넋 나간 사람처럼 지내게 했던 그 구남친의 청첩장을 보았다.

27살의 늦여름, 그를 만나 나는 뒤늦은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남동생의 같은 동아리 선배로, 통하는 점이 많았고 같이 있을 때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했던 사람이다. 함께 미래를 꿈꾸었고, 난생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남자친구라는 존재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첫사랑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부족한 점들은 많았다.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오랜 솔로기간으로 인해 열등감에 똘똘 뭉쳐 작은 행동에도 행여 나를 떠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남자친구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내가 노력한다면 영원할 줄 알았고, 정성을 쏟는다면 사람의 마음도 붙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처럼 술자리를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 술을 먹을 때면 문제가 일어났다. 함께 아는 지인의 결혼식에 가기로 한 날, 전 날 술자리에서 싸움이 붙어 상처가 가득한 얼굴로 나타났다. 결혼식에는 혼자 가야 했다. 다른 날은 술을 먹고 전화를 하며 나에게 여자동료의 욕을 심하게 해댔다. 아무리 우리가 남들보다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육두문자가 담긴 언어들을 듣고 공감해 줄 수 없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연애의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괜한 불안감들이 나를 계속 힘들게 했다. 처음에는 연애가 처음인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안감과 의심에 열어서는 안 될 그의 휴대폰을 열었다. 장난처럼 서로의 지문을 휴대폰에 등록해 놓았었다. 그리고 들어간 그의 카카오톡에는 알지 못하는 여자와의 대화가 있었고, 그 대화의 질은 아직도 손이 떨릴 정도로 더럽고 역겨웠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그에게 나는 물건을 던졌고, 짐을 손수 싸주었다. 무릎을 꿇고 내뱉는 그의 변명에도 매몰차게 나의 자취방에서 쫓아내었고, 밤새 울었다. 그날부터 나의 잠자리에는 항상 휴지가 놓아있었다. 쉽게 잠을 잘 수 없었고, 직장에서도 틈만 나면 울었다. 점심시간에는 항상 맛있게 먹으라던 카카오톡이 생각나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첫사랑을 갑자기 잊기란 너무 힘들었다. 그의 잘못을, 이제 예전처럼 되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았지만 쉽게 잊을 수 없었다.


한 달 만에 다시 재회를 했고, 반년을 더 만났다. 나를 사귀기 전부터 틴더에서 만났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고,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는 그의 다짐도 들었다. 그와의 달콤한 연애를 즐기면서도 나는 또다시 계속 불안했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결국 완전히 헤어졌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한다니, 철없이 그의 청첩장을 들고 온 동생이 어이없어 웃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괜찮았다. 그 시절 내가 많이 아팠던 만큼 나는 많이 성장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생겼다. 가식적인 사랑한다는 말이 아닌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의 결혼식에 흰 원피스를 입고 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유쾌한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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