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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Feb 21. 2022

무슨 일 하세요?

책 읽기나 영화 보기만큼 좋아하는 일이 강연 듣기이다. 특히 아프기 전 TED 강연을 즐겨 들었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강의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 철학'(A kinder, gentler philosophy of success)에 대해 들으면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 신랄하고 예리하게 통찰해 낸 그의 번뜩이는 안목과 깊이 있는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 강연의 도입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모임에 참석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무슨 일 하세요?"라는 거다.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당신을 만난 걸 기뻐하기도 하고 시계를 보면서 핑계를 대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계층구조에서 어떤 위치에 속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지와 어느 정도 성취했는지에 따라 그에게 투자할 시간의 양이 결정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쏟아부을 애정과 존중의 양까지 결정된다. 이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커리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그토록 신경 쓰고 자신의 커리어를 상실하게 될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서로에게 준거집단이 되는 동창회는 절대 나가면 안 되는 모임이라고 충고한다. 나 역시 동창회를 나갔다가 좋은 기억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어릴 적 순수한 모습을 기대하고 동창을 만나러 가지만 내 모습이 변했듯 동문들도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레 건네게 되는 게 바로 명함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건네는 명함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수십 년 소식이 끊어졌다 다시 만난 동창들 역시 어릴 적 코 흘리던 모습은 모두 잊고 명함을 보고 서로를 평가했다. 동창회에 나갔을 무렵 나는 그저 박사과정 학생이자 시간강사였기에 그들에게 건넬 변변한 명함 한 장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곧 소외되었고 그나마 내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는 동창들만 다가왔다. 내가 세속적으로 변한 만큼 그들도 세속적으로 변한 것이 당연한데 이런 모습을 마주하자 동창회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두 번 다시 나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굳이 모임이 아니더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거나 "어디 사세요?"라고 묻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공인중개사에게 살 집을 소개받는 입장이 되어도 공인중개사가 명함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의 명함을 보고 명함에 합당한 집을 소개하겠다는 것인지 의도는 불분명했지만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도 종종 받았다. 내가 사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알아보고 그 집을 구매할 만큼의 실제적 경제 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해 보려는 의도 같았다. 구매할 만큼의 경제력도 확보되지 않은 고객에게 별 소득 없이 발품만 팔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질문들은 모두 나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인한 후 그에 합당한 집을 소개하겠다는 일련의 제스처로 느껴졌다.


이처럼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거주하는지가 낯선 사람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내가 고객의 입장으로 만났음에도 처음 보는 공인중개사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거주하는지를 밝혀야 집이라도 겨우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명함을 건넬 수 없는 입장이 되거나 일을 쉬게 된다면 이사할 집조차 소개받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처럼 병마로 인해 혹은 육아로 인해 커리어가 단절된 사람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할 말이 없다. 커리어의 상실은 심각한 정신적 외상과 경제적 상처를 초래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직장을 쉽사리 그만두지 못한다. 직장에 고용되어 누군가의 노예가 될 처지에 놓이더라도 개인의 독립된 자유로움을 포기하면서까지 기꺼이 커리어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인 상태, 즉 자유로운 한 개인으로서 독립된 상태야말로 행복의 전제 조건이다.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그가 시키는 일을 강제로 수행해야 하는 노예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자존감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에피쿠로스 학파가 연구한 개인이 행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세 가지라고 한다. 첫째 친구나 우정과 같은 요소다. 사람들이 성공하고자 하고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모두 외로움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원하기 때문에 그토록 성공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둘째, 행복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상태여야 한다. 자그마한 논을 경작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라면 행복하다는 거다. 셋째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다. 매일 차분하게 홀로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만날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더라도 경쟁구도가 형성되어 동료는 친구로 보기 어려운 존재다. 게다가 하기 싫은 일까지 억지로 지시하고 시키면 노예처럼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일이 바쁘다 보면 나와 대화하고 생각할 시간조차 가질 수 없다. 심지어 내가 얼마나 소진되었는지 힘든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일에 미혹되어 바쁘게 일만 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차리기조차 쉽지 않다. 개인으로서 행복을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과연 커리어에 매달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허망한 탐욕을 쫓아 미래를 위해 행복을 미루다 보면 정작 행복은 느껴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허망한 것에 집착하기보다 참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간위적막(艱危寂寞)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간위적막(艱危寂寞)이란 시련과 적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순탄하기만 한 삶에서는 얻을 것이 없고 시련과 적막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 비로소 마음의 길을 찾을 수 있고 비로소 선명해진다는 의미다. 아프고 나니 보이는 것이 있다.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 동안 무조건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살 필요는 없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대로 내 삶을 그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 남들이 아닌 내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진정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추구하면서 내게 주워진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다 가치롭고 행복할 수 있다. 그저 바쁘게 일만 하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나를 돌아보면 분명 깨닫게 될 것이다. 과연 목숨 걸고 지금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불안해하며 집착하는 것이 진정 원하던 바인가? 참된 행복을 포기하고 연기하면서까지 폭주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바라던 삶인가? 아프고 나니 보이는 것이 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는 거다. 허망한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나에게 가치롭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에 의미를 두며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만이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길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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