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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Jun 14. 2023

비 오는 날의 단상 1

언제부터인가 비 오는 날은 굳이 외출하고 싶지 않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사색에 잠기고 싶다. 물론 비 오는 날 들으면 좋은 음악과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바쁘게 살 때는 비가 오면 마음속에 고스란히 쌓인 서러움과 울분, 참아야 했던 속상한 감정이 다 씻겨 내리는 것 같아 후련했다. 아프고 나서부터는 별로 참을 일도 없고 속상한 일도 생기지 않았다. 누구도 환자인 나에게 예전처럼 많은 걸 기대하지 않다 보니 억지로 편해진 점도 있다. 마음속에 쌓인 울분이나 번뇌가 거의 없다 보니 비가 와도 예전처럼 후련하거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외려 다소 센티멘털하고 멜랑꼴리 해진다. 가슴속에 되새길 추억조차 없는 빈한한 신세지만 왠지 비 오는 날은 말 못 할 묵직한 사연 하나 간직한 사람처럼 차분해지고 가라앉는 느낌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비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바뀐 것이. 비 오는 날이 예전처럼 좋지 않다. 화창하고 볕이 잘 드는 햇살 좋은 날이 좋다. 비가 오면 여기저기 결리고 쑤신다. 마음까지 가라앉아 기분마저 울적하다. 젊은 날엔 비 오는 날이 운치가 있어 좋았다. 드러내지 못한 열정과 분출하지 못한 생을 향한 갈망을 식혀 주니 좋았다. 비가 오면 갈증이 해소되고 주체할 수 없는 삶의 용광로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비가 오는 날은 모든 욕망과 갈망이 잠재워지고 비워지는 것 같아 편안했다. 세상사 모든 번뇌와 시름을 씻어내는 안식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생을 향한 열망도 열정도 사라지고 냉정한 현실 앞에 선 나이가 되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얄궂게 느껴진다. 더 이상 삭힐 삶의 열정과 온도도 없는데 내리는 비는 잔인하다.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젊을 땐 가진 게 없어도 시간이 있고 건강이 있으니 무엇이건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비록 현실은 보잘것없더라도 얼마든지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이 꽃보다 아름답고 찬란하니 젊은 시절엔 꽃이 예뻐 보이지 않는다. 꽃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유난히 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몸이 늙고 병들수록 꽃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누가 그랬다. 꽃이 예뻐 보이는 건 그만큼 나이 든 증거라고.



어디 꽃뿐이겠는가. 비가 더 이상 좋지 않고 햇살 좋은 맑은 날이 좋은 걸 보면 나도 제법 나이가 든 모양이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無常)과 인간사의 변화무쌍(變化無雙)을 느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에 순응하고 인생의 계절에 수렴해 가야 할밖에. 비가 싫다고 어린애 마냥 무조건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의 유용한 점도 꽤나 있다. 비록 간담은 서늘해지지만 정신이 들고 이런저런 생각이 정리된다. 가장 큰 비의 유용함은 사색의 포문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미뤄왔던 생각, 해결되지 않은 문제, 정리되지 않은 생각에 단초를 제공한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또렷해지니 떠오르지 않던 방안이 강구된다. 비 오는 날은 어설픈 철학자가 되기도 하고 서툰 시인이 되기도 한다. 산다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비 오는 날은 뭐니 뭐니 해도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쓰디쓴 커피 한 잔이 제격이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코끝에 진한 커피 향의 여운이 감돌고 차디찬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인생의 쓴 맛과 닮은 커피는 사색하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같다. 마치 셰르파(sherpa)처럼. 온종일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그간의 시간과 추억이 아련하고 아득해진다.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인생은 모르겠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열망도 열정도 사라지고 현실만이 오롯이 남은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외려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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