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껏 쉬거나 놀아본 적이 거의 없다. 인생의 대부분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내 인생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유방암 판정을 받고서야 겨우 쉴 수 있었다. 쉬다 보니 '뭐 이런 신세계가 있나?' '뭐 이런 별천지가 있지?'와 같은 행복감을 경험했다. 아프기 전 가족들에게 들은 말은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자기 일을 하면서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집에서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것이야말로 축복이고 은혜였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생계에 대한 압박이나 의무감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저 빈둥거리며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며 쉬고 싶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무한정 쉴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사실 나만 먹고 살기의 고됨과 고단함을 경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우리들은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 생계의 현장을 누비며 고군분투하며 지낼 것이다. 최근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유난히 많이 들리는 것 같다. 물가 상승이 가팔라도 너무 가팔라 체감하고도 남을 만큼이다. 물가가 지금처럼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만 원을 가지고 나가면 그나마 살만한 것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밥과 커피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 원을 가지고 나가면 한 끼 식사도 해결하기 힘들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다는 냉면이나 칼국수조차 웬만하면 만 원이 넘는다. 만 원만 가지고는 장을 보기도 힘들다. 사실 몇 개 사지 않았는데도 십만 원이 훌쩍 넘는다. 어디 그뿐이랴? 기름 값은 또 얼마나 올랐는지 예전과 동일한 금액을 주유해도 예전에 달리던 거리에 한참 못 미친다. 거기에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까지 인상하다 보니 이래저래 먹고살기가 점점 더 팍팍해진다. 치솟는 물가에 '모든 것은 다 올랐는데 내 월급만 그대로다'라는 자조 섞인 푸념도 들린다.
예전에 들었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우리 인간들만 먹고살기 힘든 게 아니라 고양이도 먹기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한다. 옛날 옛적에 고양이와 쥐가 한 집에 살고 있었다. 쥐들이 어찌나 날렵하고 민첩한 지 고양이는 며칠째 쫄쫄 굶고 있었다. 허기가 져 더는 견딜 수 없던 고양이는 사력을 다해 쥐를 뒤쫓았다.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는 마지막 순간 쥐가 쥐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배가 고팠던 고양이가 갑자기 쥐구멍에 대고 '멍멍! 멍멍!' 하면서 개 짖는 소리를 냈다. 고양이에게 쫓겨 도망 온 쥐 입장에서는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자신을 쫓아온 게 고양이가 아니라 개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쥐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쥐를 잡아챘다. 그러면서 고양이가 이렇게 말했다는 거다. "요즘 세상에 먹고살려면 최소한 2개 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한다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곧 씁쓸해지기도 했다. 얼마나 먹고살기가 각박하고 힘들면 이런 유머까지 생겼을까 싶어서다.
요즘은 한 가지 직업으로는 생계유지조차 힘들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N잡러의 시대라고 한다. N잡러는 2개 이상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N잡러 유형으로는 직장을 다니면서 유튜브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에서 creator(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경우다. 혹은 본업은 교사인데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강연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평일엔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다. 더 이상 한 번의 취직이 평생직장을 보장해주진 않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의 직업 만으로는 생계조차 유지하기 버거울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향상시켜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N잡러라고 할 때 쇼핑몰 운영이나 크리에이터, 글쓰기 등을 본업과 병행하거나 대리운전,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 등의 긱 경제(gig economy)에 참여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긱 경제(gig economy)란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일하는 형태로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을 뜻한다. 10년 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측도 있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해 구직자들 간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하는 실정인데 그것도 모자라 이젠 로봇이나 기계와도 일자리 경쟁을 해야 한다. 단순 노동 혹은 단순 사무 작업 등은 로봇이나 기계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저임금에 머물 수 있다. 긱 경제가 활성화되면 안정적 수입을 얻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이 필요한 직군이 유리하다. 로봇이나 기계에 대체되지 않을 수 있는 개발자, 디자이너, 창조적 작업을 하는 예술가, 로봇 정비 기술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이 유망 직종으로 떠오른다.
이래저래 먹고살기 힘들다는 암울한 전망이 차고도 넘친다. 지금도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으로 대출금 상환의 압박이 증가하고 있어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더 이상 한 가지 직업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가 팍팍할 수 있다. 원하지 않아도 여러 개 직업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도록 내몰린다. 필연적으로 나이가 몇 살이든 현업에 종사하기 위해선 평생 공부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스스로가 자신의 몸값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제2 외국어를 구사해야 먹고살 수 있었던 고양이처럼 우리들도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위기와 기회는 한 끗 차이라고 했다. 여러 직업을 가져야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된 만큼 내 안에 잠재력을 끌어모아 나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나도 몰랐던 내 능력을 펼쳐보자.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기회가 눈앞에 펼쳐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