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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Nov 16. 2023

당신의 중년은 안녕하십니까?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 <쉘 위 댄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Le grand bain, 2019 개봉)은 가정, 직장에서 낙오되고 미래의 걱정으로 인해 다소 우울한 중년의 위기를 겪는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Erikson(에릭슨)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인생의 각 단계는 그 시기에 달성해야 할 발달 과업이 있다. 이를 심리사회성 발달단계라고 부른다. 중년의 시기에도 성취해야 할 발달과업이 있는데 에릭슨에 의하면 '생산성 VS 침체성'이라는 발달 과업이 이에 해당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생산해 내는 활동을 하지 못하면 삶이 정체되는 시기이다. 부부관계에도 권태가 찾아오고 직장생활도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사업이 실패하거나 이혼을 겪는다면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하는 일이 있더라도 기본적 생산활동을 유지할 뿐 창의적 생산활동이 원활하지 못하면 침체를 경험한다. 이럴 때 새롭고 흥미로운 활동에 도전하면서 창의적이고 생산적 활동을 하게 되면 중년이 겪는 위기에서 탈출하게 될 공산이 크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 등장하는 수중 발레 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갈등과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중년들이다. 여자 코치 델핀과 아만다도 마찬가지다. 2년 차 백수이자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베르트랑, 파산 직전의 사장 마퀴스, 이혼하고 캠핑카에 홀로 살고 있는 히트곡 전무한 로커 시몽, 인생에 낙이 없고 이성교제에도 서툰 싱글 티에리,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이혼하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 아들을 홀로 키우며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로랑, 요양병원에서 냄새 때문에 숨 참는 연습을 하며 청소를 하는 존, 수중 발레 선수로 국제대회에서 우승도 했지만 파트너가 사고를 당해 수영을 못하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가 겨우 재기한 코치 델핀, 그녀는 알코올 중독에선 벗어났지만 2년 헤어져 결혼한 전 연인에게 스토커처럼 집착해 경찰에 신고까지 당한다. 잘 나가던 수중 발레 선수 시절 델핀의 파트너였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휠체어 없이는 거동할 수 없게 된 아만다도 남자 수중 발레 팀 코치로 합류한다. 이들은 매주 수중 발레를 연습한다. 연습 후에는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막역하게 지낸다. 그러던 중 남자 수중발레 세계선수권 대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그들이지만 금메달까지 획득하게 된다.



매사에 우울하고 부정적이던 베르트랑은 네모는 절대 동그란 틀에 들어갈 수 없고 동그라미도 절대 네모 틀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수중 발레로 우승까지 차지한 후 생각이 변한다. 의지만 있으면 동그라미도 네모 틀에 들어갈 수 있고 네모도 동그란 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팀원들과 코치들은 우울, 권태,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 보다 활기찬 삶을 살게 된다. 이와 유사한 영화로 일본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ダンス(Dance)?, 국내 개봉 2000)가 있다. 스기야마 쇼헤이는 성실하고 근면한 회사원으로 가정이나 회사에서 두루 인정받는 사람이다. 일상은 매우 안정적이고 큰 문제가 없지만 스기야마는 무료한 일상에 지치고 따분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철을 타고 가다 댄스 교실 창문으로 한 여인을 보게 되고 그녀에게 이끌려 댄스 교실에 등록하게 된다. 시작은 다소 엉뚱하고 불순한 마음에 기인했지만 스기야마는 스포츠 댄스에 진심으로 흥미를 갖게 된다. 스포츠 댄스에 몰입하게 되면서 스기야마는 일상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수영장으로 남자들>의 주인공들이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반면 <쉘 댄스>의 주인공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문제가 없어 무료하고 따분한 사람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이라는 차이도 있지만 이들 모두는 중년기라는 인생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에릭슨이 말한 발달 과업 중 '생산성 VS 침체성'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가정이나 직장 등 모든 것이 안정적일 뿐 더 이상의 창조적인 일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도 새로운 도전과 창조적인 생산을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의 주인공들에겐 수중 발레가, <쉘 위 댄스>의 주인공에겐 스포츠 댄스가 새롭고 창조적인 생산을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그들 모두는 새로운 취미 활동으로 무기력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다 활기차고 재미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더 이상 새로움이 없고 창의적이고 창조적 산출이 없는 삶을 살다 보면 지루하고 따분해진다. 권태가 찾아오고 무료함이 일어난다. 큰 문제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도 창의적 생산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침체를 경험한다. 가치 있는 삶이란 욕망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무료하고 따분하더라도 별문제 없이 사는 사람은 낫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이혼, 실직, 해고, 파산, 질병 등을 경험하게 되면 부정적 정서를 수반한 위기를 겪게 되고 침체를 경험할 수밖에 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 한다. 치유란 고통을 줄어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활동 자체가 주는 기쁨을 통해 활력과 활기를 되찾는 것이다. 즐겁고 재미있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활동, 바로 그 활동을 통해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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