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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Nov 04. 2023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백창우 시인의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 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 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시를 읽고 속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하긴 처음이었다.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 개똥 같은 희망 하나 품고 산다는 시인의 말에 몹시 공감이 갔다. 만만치 않은 삶 속에서 더 큰 불행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불행은 비처럼 스며든다.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지만 그야말로 잠시잠깐일 뿐, 차디찬 바람에 코트 깃을 세우고 고단함에 뒤척이는 무수한 시간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 삶 속에서도 개똥 같은 희망 하나에 살아갈 힘을 얻고 용기를 낸다. 행복이 뭐 별거겠는가. 그런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행복인 게지. 개똥 같은 희망도 희망이다. 그런 희망 하나가 날 살게 한다. 삶에 지쳐 울고 싶은 날,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며 하늘을 원망하고 싶은 그런 날,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조차 술이 마시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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