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가 귀하던 조선시대에 잔칫날이나 먹을 수 있었던 국수는 이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것이 되었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저마다의 고된 사연이 담겨진 것만 같은 뜨끈한 국수를 후루룩 넘기다 보면 '사는게 뭐 이런거지' '별 게 있겠어?' 라는 위로를 받는다. 마음 한켠이 공허하고 헛헛한 날, 왠지 울고 싶어지는 그런 날,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이 먹고 싶다. 정갈하고 세련된 식당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낡고 허름한 식당에서 엄마같은, 할머니 같은 분이 끓여주는 따끈한 국수가 먹고 싶다. 마치 엄마가, 할머니가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은 정겨움과 푸근함이 느껴져서일까. 그런 곳에서 먹는 한 그릇의 국수는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장날, 장터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등을 맞대고 후루룩 넘기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은 온 몸에 온기를 돌게 한다. 등을 마주한 모르는 이들의 삶의 고단함과 내 삶의 허망함이 따뜻한 국수 한 그릇에 녹아든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따끈한 국수가 필요한 날이 있다. 그런 날, 시린 마음까지 데워줄 따뜻한 국수를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