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6. (월)
참 간사하게도, 어제까지만 해도 순례길의 낭만을 노래했건만 오늘부터는 벌써 현실 속으로 쑥 들어와버렸다. 조금이라도 싼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에 산티아고 새벽 시내를 걸어 기차역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이동하고, 얼마나 오래 무엇을 타야 한국에 갈지를 내내 생각했다.
마드리드까지 세 시간을 달리는 기차의 창밖은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해가 뜨고 창밖으로 스페인의 풍경이 펼쳐졌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 지난 30여 일 동안 질리도록 보아왔던 풍경들과 놀랄 만큼 똑같았다. 그랬다. 사실 순례길은 어디에나 있었다. 언제나 그자리에 있었던 길을 내가 온전히 걸었을 수도 있었고, 기차를 타고 지나갔었을 수도, 또 비행기를 타고 그 위를 날아갔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길이 어디였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길을 어떻게 지나갔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나는 한 달 동안 그 길을 오직 내 두 발로만 걸었고, 그 길을 온몸으로 겪어냈다. 그게 다를 뿐이다.
내가 순례길의 걸었던, 내 인생을 통틀어봐도 참 독특했던 그 방식은 아마도 온전히 걷는 내내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점에서 다른 길들과 달랐던 것 같다. 너무나 단순한 목적과 일상으로 내내 걸었지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던 이유도 너무나 단순한 목적과 일상이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해도, 느리게 걸어도, 심지어 길을 잃어도 결국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그 단순한 길에서는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스스로를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그게 그 길을 걷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순례길의 끝은 어디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답을 찾은 것 같다. 프랑스 길도,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도, 또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도 모두 내가 가야하는 순례길이다. 어디로 어떻게 가든 결국 종착지는 같다. 내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모두 나에게는 똑같은 순례길이다. 단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나의 순례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번 순례길을 몸과 마음으로 걸으면서 배웠던 방식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내 앞에 놓인 인생길을 순례길에서 배운 방식대로 걷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저마다의 순례길을 걷고 있는 길 위의 모든 친구들에게. 부엔 까미노.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은 내가 걸었던 순례길과 똑같았다. 걷든 기차를 타든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느냐였다. 순례길에서 배운 방법으로 내 인생의 순례길을 계속 걷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