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처음 피노키오를 접하게 된 계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일 것이다. 나처럼 나이대가 있는 사람은 아이들에게 비디오테이프로 틀어주고 같이 본 경험이 있다. 예쁘게 색칠한 귀여운 목각 인형피노키오와 제페토 할아버지와 귀뚜라미 제미니의 신나는 모험과,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늘어나는피노키오가 나중에는 진짜 사람이 되는 해피엔딩으로 가족들에게 재미를 선물했다. 그걸로 끝이어서 원작 동화를 찾아볼 생각도 한 적이 없고 실사 영화가 나왔다고 해도 다시 볼 생각도 없었는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대를 하며 영화를 보았고, 그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았다.
제목도 그냥 피노키오가 아니라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무 조각의 장인 제페토에게는 카를로라는 아들이 있었다. 예쁘고 착하고 다정한, 누구나 갖고 싶은 아들의 전형이자,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다. 작업을 할 때 늘 데리고 다니며 나무를 하나 벨 때마다 아들이 주운 완벽한 솔방울을 하나씩 심어서 새로운 생명을 키웠다. 어느 날, 둘이 함께 성당의 십자가 예수상을 다듬고 나왔는데, 카를로가 두고 온 솔방울을 찾으러 성당에 다시 들어간 순간, 무게를 줄이려는 폭격기가 폭탄을 우연히 성당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죽고 만다.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술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무덤가에 아들의 솔방울을 심어서 키운 소나무를 잘라 아들 크기의 꼭두각시 인형을 만든다.
오래도록 제페토를 지켜본 가디언인 푸른 요정이 상처 입은 이에게 기쁨과 위안이 돼주라며 인형에게 생명을 주고, 소나무로 만들었으니 이름은 ‘피노키오’라고 하고, 나무 안에 살던 귀뚜라미에게는 여전히 피노키오의 심장에 살며 그의 양심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으로 생명을 얻은 피노키오는 모든 게 새롭고 호기심이 가득하여 천방지축 말썽을 부리게 된다. 파시스트인 마을의 시장 볼페의 명에 따라, 제페토는 피노키오에게 규율을 가르치려고 카를로가 쓰던 책을 주며 학교에 가게 했는데, 그 아이는 스타를 만들어주겠다는 서커스단장 포데스타의 꾐에 빠져 학교를 빼먹고 그곳에 가서 불공정한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제페토가 관중의 호응을 받고 좋아서 정신이 없는 무대 위의 피노키오를 찾아서 데리고 나오려는데, 단장 포데스타는 계약서를 들이밀며 천만 리라의 위약금을 내라고 한다. 한사람은 내가 만들었다고, 다른 사람은 내가 재능을 발견했다고, 서로 자신이 진정한 아버지라며 피노키오를 당기고 싸우다가 피노키오가 트럭에 치여 죽게 된다.
피노키오는 저승에 끌려가서 푸른 요정의 쌍둥이 자매인 죽음의 여왕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가 영혼이 없는 존재라 진정으로 죽을 수도 없다며, 여러 번 죽어도 계속 다시 살아날 것이고 그 대기시간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는 동안이라고 한다. 그녀의 말대로 다시 깨어난 피노키오를 집으로 데려오며, 제페토는 그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며 카를로처럼 착한 아이가 되라고 만들었더니 이렇게 부담을 준다고 원망한다.
고민하던 피노키오는 돈을 벌어 사랑하는 아빠에게 보내겠다며 가출하여 서커스 단장에게로 가서, 위약금도 없애고 자신이 번돈을 아빠에게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공연하기로 한다. 볼페 단장은 그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었으나, 무솔리니에 충성하여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의 쇼를 하라고 하고, 쉴 틈도 없이 피노키오를 혹사시킨다. 단장이 오랫동안 데리고 있던 원숭이 스파자투라를 때리는 것을 보고 피노키오가 말리자, 그는 피노키오가 노예에 불과한 존재라고 소리친다. 정신을 차린 피노키오는 원숭이와 짜고 무솔리니가 보러 온 공연에서 그를 똥싸개 어린이로 묘사하며 모욕해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다시 깨어난 피노키오는 이번에는 파시스트 시장 볼페가 만든 소년 전쟁 캠프에 끌려간다. 그의 아들 캔들윅은 아버지의 뜻대로 용감한 영웅이 되어 그를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피노키오와 친구가 된 그는, 1등이 되기 위해서 피노키오를 총으로 쏘라고 하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겁쟁이라고 부르며 직접 피노키오에게 총을 쏘려는 순간,적군의 폭격으로 모두 죽게 된다.
또다시 깨어난 피노키오 앞에 단장 포데스타가 서있다. 그는 자신을 망하게 한 피노키오를 원망하며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우려고 한다. 이때 그를 평생 따르던 원숭이 스파자투라가 단장을 공격하며 피노키오를 풀어주고 폭격으로 모두 바다에 빠진다. 단장은 죽고, 둘은 십자가를 뗏목 삼아 매달려 있다가 괴물 고래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신이 심한 말을 한것을 반성한 제페토도 피노키오를 찾아 세상을 헤매다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던 중, 괴물 고래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머물고 있었는데, 드디어 부자는 괴물의 뱃속에서 재회하게 된다. 안에서 피운 모닥불 연기로 고래가 숨구멍으로 재채기를 할 때 그들은 밖으로 탈출한다. 그러나 또다시 빨려 들어가려는 순간, 피노키오는 어뢰를 폭파시켜 고래를 죽이고 그 충격으로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다시 저승에 온 피노키오는 바다에 빠진 아빠를 구하기 위해 빨리 돌아가려고 하지만, 죽음의 여왕은 대기시간의 규칙을 어기면 영생의 능력을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경고하고, 피노키오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며 아빠를 위해 기꺼이 바다로 돌아간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진짜 소년이 되어 피노키오는 세상으로 돌아와서 아빠를 구하고 진짜 죽는다.
죽은 피노키오를 껴안고 울부짖는 제페토 앞에 생명을 주었던 푸른 요정이 나타난다. 이 아이가 아빠를 살리기 위해 진짜 인간이 되었고 인간은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피노키오의 의식이었던 귀뚜라미의 마지막 소원의 기회로 피노키오는 다시 생명을 얻고 부활한다.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던 그의 어리석음을 사과하며, 그를 본래의 모습 그대로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제작자나 감독의 시각과 의도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디즈니 만화영화가 재미있었지만 감동의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원작을 찾아볼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다시 만든 피노키오를 보고 너무 감동하여 원작도 알아보게 되었다. 그도 원작을 존중하여 제페토의 죽은 아들의 이름을 작가의 이름을 따라 카를로라고 하였다.
1800년대 말 카를로 콜로디라는 작가가 잡지에 연재하던 글을 묶어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소설을 발간했는데, 원래 생명이 있던 나무로 만든 움직이는 인형이 벌이는 온갖 일탈 행동들을 묘사했다. 이 인형이 의미하는 바는 누가 봐도 명확하게 어린이들로, 그들의 호기심과 장난과 말썽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교육을 통해서 점점 사회에 적합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소년으로 자라는 결말로 끝나는 계몽의 성격을 가졌던 것 같다.
이것을 영화화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일단 캐릭터의 모양과 색이 예뻐서 가족이 같이 보기에 거부감이 없다는 장점이 있었고, 여러 모험 끝에 진짜 아들 또는 진짜 인간이 되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다.
둘 다 말썽꾸러기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바람직한 소년이 되어가는 성장기이다.
그러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꾼다.
아이들은 원래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아버지들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세상에는 미숙한 아버지들 천지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성숙한, 진정한 아버지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관객들에게 제기한다.
영화에는 세가지 아버지 유형이 나온다.
먼저 제페토라는 아버지로, 카를로라는 너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고, 그가 죽자 그를 대체할 피노키오를 만든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카를로에 미치지 못해서 아버지를 실망시킨다. 피노키오는 자신이 아닌 카를로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 마음대로 좋아하는 아들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는데, 실제 아들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매번 자식을 주변의 엄친아와 비교하는 부모들이 떠오른다.
다음으로 서커스 단장인 포데스타가 있다. 얼핏 보면 연예기획사 사장 같은 인물로 나오는데, 그는 소속사 연예인들을 발굴하고 연습시키고 혹사한다. 즉, 자식의 재능을 찾아내고 키워주고 최고를 만드는 아버지이다. 그러나 재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학대하고 무시하는 아버지이다. 아들 같은 원숭이 스파자투라가 쓸모가 없어지고 반항하자 그를 마구 때린다.
마지막으로 마을의 시장인 볼페이다. 파시스트인 그는 아들이 사회 시스템에 충성하고 출세하여 명예를 높이도록 밀어붙이는 아버지이다. 아직 어리고 겁이 많은 아들 캔들윅을 무리하게 영웅이 되라고 요구한다. 결국 아버지를 자랑스럽고 기쁘게 하려고 평생 노력하던 아들은 마지막에 친구를 죽이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한다.
세 유형 모두 아버지답지 못한 아버지이다. 어떻게 보면 현실의 아버지들에게 이런 특성들이 모두 섞여서 들어있기도 하다. 포에스타도 볼페도 그릇된 교육으로 아들을 망치고 작품속에서 죽는다. 아버지의 성장과정에서 이런 교육방식은 옳지 않아서 자식을 망치니 이런 아버지상은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소년이 성장해나가는 것처럼, 아버지도 아이들을 키우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여 진짜 바람직한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중에는 제페토가 고행을 통해 성장하여 깨달음을 얻고 아들 피노키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아버지가 된다.
그러니 앞으로는 밤하늘에 위싱 스타가 나타났을 때 “우리 아이가 진정한 아들이 되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내가 진정한 부모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감동적인 부분은 피노키오가 진짜 사람이 되는 과정이다. 그는 죽지 않는 존재여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한히 재미있고 용감하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제페토가 위험에 처하자 불사의 운명을 포기하고 자신을 희생해서 아버지를 살린다.
극 중에서도 피노키오가 예수님도 나무고 그도 나무여서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는 대사처럼, 그는 예수처럼 다른 이를 위하여 희생하고 떠난다. 그래서 푸른 요정은 그를 진짜 인간으로 부활시킨다. 그리고 세상은 그로 인해 사랑으로 가득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