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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장화 신은 고양이>-참을 수 없는 패러디의 즐거움

모털의 마지막 소원

by 윤병옥

슈렉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을 기억한다.

기존 디즈니 작품의 단순한 플롯과 해피엔딩과 착한 캐릭터의 환상을 비트는 재미가 짜릿했었다. 그러나 패러디 작품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작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인용하고 어떻게 비틀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패러디 작품이 그렇듯이 어른이라야 과거에 보았던 작품을 끌고 와서 새 작품의 표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패러디 영화는 성인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린이들도 선입견 없이 그냥 재미있게 볼 수는 있다.

장화 신은 고양이는 슈렉의 번외 편인데, 1편에서는 단지 ‘조로’를 흉내 내는 고양이의 모험을 그렸다면 속편에서는 거기에다 죽을 운명을 가진 피조물들의 생애를 의미 있게 그려서, 속편은 언제나 1편보다 못하다는 속편의 징크스를 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편은 조로를 연상시키는(목소리 연기도 조로를 연기한 안토니오 반데라스이다) 고양이 푸스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험프티 덤프티라는 달걀 모양의 캐릭터 친구와 마법의 콩을 심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납치해 오는 모험 이야기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유명한 동화 ‘잭과 콩나무’의 플롯을 그대로 따와서 진행한다. 버려진 푸스를 거두어 키워준 고아원 엄마가 그에게 조로를 연상시키는 모자와 망토와 부츠와 칼을 주었고, 임무가 끝나면 자신의 이니셜 P를 조로의 Z 대신 남긴다. 여기서 여자친구 키티도 만난다.

2편에서 푸스는 이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영웅이어서,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두려움 없이 임무를 완수하는데, 그 이유는 그에게 9개의 목숨이 있어서 죽을 위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거인과의 싸움에서 재치 있고 용감하게 거인을 처치하지만 부주의하게 사람들 앞에서 뽐내다가 거인의 목을 감고 있던 큰 종이 떨어져서 깔려 죽게 된다. 이발사이자 의사이자 신인 남자에게 불려 간 푸스는 까불다가 8번 죽었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생이라는 경고를 받게 된다. 그러면서 푸스에게 안전한 장소나 의지할 사람이 없냐고 묻지만, 그는 만인의 연인일 뿐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의사는 마마 루나가 운영하는 고양이 시설을 추천한다.

제안을 거절하고 술집에 간 푸스 옆에 빨간 눈에 검은 망토를 두른 늑대, ‘빅 배드 울프’가 나타나는데 그는 평범한 현상금 사냥꾼이 아닌 ‘죽음’ 그 자체로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그와의 싸움에 패하고 두려움에 떨며 고양이는 마지막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마마 루나의 집으로 도망해서 부츠와 망토를 벗어서 땅에 묻고 시설로 자진해서 들어간다. 그가 왕년의 모험담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단체로 사료를 먹고, 남들 다 보는 데서 볼일을 보고, 다 함께 잠을 자는 생활을 하면서 그는 존엄성을 잃고 눈빛이 흐려지며 흰 수염이 얼굴을 덮는다. 여기서 고양이인 척하는 유기견 페로와 만나 친구가 된다.


한편, 지구 어딘가에 소원을 들어주는 별똥별인 위싱 스타가 떨어지는데, 골디락스와 세 마리의 곰들은 빅 잭 호너가 가진 별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찾으려면 푸스의 솜씨가 필요해서 마마 루나의 시설을 찾아오게 된다. 이때 과거 여자친구 키티도 같이 온다.

이들 각자의 소원은 다 다른데, 푸스는 다시 9개의 목숨을 보장받아 두려움 없는 영웅이 되고 싶고, 잭 호너는 모든 마법을 가지기를 원하고, 골디락스는 곰이 아닌 진짜 부모를 원한다. 키티는 믿을만한 파트너를, 페리는 친구를 원한다.

이때부터 이들의 지도를 뺏고 뺏기는 모험이 시작되고, 누가 지도를 만지느냐에 따라 지도는 다른 길을 보여주는데 신기하게도 페로에게만 쉽고도 아름다운 꽃길을 제시한다. 푸스가 위싱 스타에 먼저 도착하여 소원을 빌려는 순간, 늑대의 모습을 한 죽음이 다가온다. 친구들의 지지를 받은 푸스가 목숨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결사적으로 늑대와 맞짱을 뜬다. 늑대는 두려움에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는 존재와 싸우는 것은 재미없다며, 이번엔 제대로 살아보라고 하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다며 사라진다.

골디락스는 아기곰이 차원 밖으로 사라지려고 하자 지도를 포기하고 동생을 구한다.

잭 호너는 메리포핀스 가방 안에 있는 ‘나를 먹어요’쿠키를 먹고 몸이 커져서 나온 후 지도를 뺏고 소원을 빌려고 하지만, 양심 귀뚜라미가 불사조의 화염으로 지도를 태우는 바람에, 녹아내리는 별로 빠져 사라진다.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은 행복한 가족이 되고, 우정을 얻은 세 친구 푸스,키티, 페로팀이 되어 활약하게 된다.



1편에서 버려진 아기 고양이로 고아원에서 자란 푸스가 2편에서 영웅이 되어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으나 자만심과 배신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을 맞는다. 두려워진 푸스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들어간 보호소는 먹고 싸고 자는 일이 다인, 누가 보아도 요양원을 떠올리게 하는 시설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푸스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일생을 돌아보게 하는 성인의 영화이다. 영화는 죽음이 두려워서 최후까지 당당하게 살지 못하면 존엄성을 잃은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만인의 사랑을 얻어도 소중한 존재의 사랑을 잃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해 준다.

여자친구 키티는 푸스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았지만 그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여성적 부분이다.

친구인 유기견 페리토는 주인이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을 버렸지만, 타고난 긍정적인 캐릭터로 친구들에게 희망을 준다. 위싱스타 지도가 길을 제시할 때도 그에게만 꽃길을 보여준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같은 일이어도 쉽고 행복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푸스는 친구들의 우정 덕분에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한 마지막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같이 모험을 하는 캐릭터로 나온 골디락스와 세 마리의 곰은 동화 원작에서는 골디락스가 곰의 집에 와서 아빠 곰과 엄마 곰과 아기곰의 물건들 중 어느 것이 알맞은지 시험해 보다가 그들이 나타나자 도망가는 엔딩이었지만, 영화에서는 골디락스가 그들에게 입양되어 같이 사는 설정이다. 그녀는 동화에 나왔던 ‘딱 알맞은’(just right) 것들을 늘 탐색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가족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가족을 만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 곰의 무한한 사랑과, 페로의 “너는 가족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고 아기곰을 위험에서 구하고 곰들을 가족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

이 영화의 빌런은 잭 호너이다. 마더 구스의 동요에 나오는 식탐 많고 스스로를 착하다고 외치는 리틀 잭 호너가 자라서 빅 잭 호너가 되었는데 그는 어릴 때 자신이 인기가 없었던 것이 마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이코패스이다. 죄책감도 없고 목적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거침없이 희생시키고 결국 자신이 죽을 때에도 뉘우치지 않는 인물이다. 다른 캐릭터들은 사연도 있고 나쁜 짓을 하다가도 깨달음을 얻고 착해지지만 이 캐릭터는 시종일관 죄의식이 없어서 관객들이 편하게 미워할 수 있다. 녹고 있는 위싱스타에 터미네이터 2처럼 엄지손가락을 들고 빨려 들어가면서도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당하나?”라고 말하며 끝까지 웃음을 준다.

처음에는 빌런인 줄 알았던 빅 배드 울프는 죽음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성인이 보아도 섬뜩한 캐릭터이다.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유한성을 일깨우는 철학적인 캐릭터이다. 누구든 그와 결투를 벌일 각오가 아니라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나치게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에다 검은 도포와 갓을 쓴 저승사자도 무섭지만, 빨간 눈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양손에 낫을 든 늑대도 한번 보면 잊을수 없는 이미지에다 만만치 않은 공포를 선사한다. 상대방이 죽기를 불사하고 달려들면, 그는 오히려 불멸이라고 착각하는 오만한 존재인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김샌다며 한발 물러선다. 결국 이 영화의 부제가 된 ‘마지막 소원’도 주인공이 죽음과의 싸움을 무릅써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만화 영화는 거의 실사를 방불하게 진짜 같아서 불편할 때도 많다.(불쾌한 골짜기에 다다른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화사한 색이 동화적 분위기를 주면서 현실과 다른 분위기를 주어서 좋았다.(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푸스와 키티의 눈동자 색은 형광빛이 도는 환상적인 색이어서 보는 내내 관객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또 참고로,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의 내용을 찾아보는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 크게는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 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의 곰’이 있고, ‘리틀 잭 호너’라는 동요가 있다. 위싱스타도 피노키오의 주된 설정이었고, 무엇이든 끝없이 다 들어가는 메리포핀스 가방, 미녀와 야수에 나왔던 천리안 구슬, 피노키오에 등장한 양심 귀뚜라미 지미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왔던 ‘eat me’쿠키, 신데렐라의 매직 원드와 호박마차,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꽃길 등등이 있는데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것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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