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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멀홀랜드 드라이브>-환상으로 얻는 찰나의 구원

그녀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세계

by 윤병옥

어려운 영화의 대명사가 된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플롯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고 스토리도 난해하다. 똑같은 배우들이 1부와 2부에 등장하지만, 성격도 다르고 관계와 이름도 다르다.

플롯을 분석하고, 스토리를 해석하여 나름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는, 흥미로운 영화의 세계 속으로 모두를 초대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부-

비현실적으로 흥겨운 댄스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남녀가 짝을 맞추어 지르박을 추고 있다. 대회에서 1등을 한 듯한 아름다운 여성이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아름답고 티 하나 없이 밝은 여성의 이름은 베티로, 할리우드에 배우 오디션을 보기 LA의 부자 고모네 집으로 가는 중이다. 고모도 유명한 영화배우여서 캐나다로 촬영을 가고, 비어있는 집을 조카에게 마음대로 쓰라고 한다. 비행기에서 만난 유쾌한 노부부는 공항에서 작별을 하며 베티에게 성공하라는 덕담을 건넨다.

한편,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수상한 남자들에 의해 납치된 한 여성은,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순간 자신이 탄 차에 마주 오던 술에 취한 사람들이 운전하던 차가 충돌해서 사고가 난다. 그 여자는 그 틈을 타 겨우 탈출해서 도망치다가 우연히 베티의 고모네 집에 들어오게 된다. 베티가 들어와서 그녀를 발견하고 이름을 묻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우연히 본 영화 포스터의 배우 리타 헤이우드를 보고 자신의 이름을 리타라고 말한다. 그녀의 핸드백 안에는 돈다발과 파란 열쇠가 들어있지만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베티가 집에 리타를 있게 하고 배우 오디션에 가는데, 그녀가 연기를 하자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재능을 칭찬한다. 또 다른 오디션 장소에서 감독인 아담 캐셔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투자자의 강한 압력 때문에 결국 카밀라라는 다른 여자배우를 캐스팅하게 된다.

돌아온 베티는 친절하게 리타가 기억을 되살리도록 돕는데, 함께 윙키스라는 레스토랑에 가서 커피를 가져다준 웨이트리스의 명찰에서 다이앤이라는 이름을 보자 리타가 자신의 이름이 다이앤 같다고 한다. 둘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그녀의 집주소를 찾아낸다. 그 집에 가보니 그 주소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집주인은 다이앤과 자신이 집을 바꾸었다며 바꾼 집을 가르쳐준다. 거기에 가보니 다이앤이라고 생각되는 젊은 여자의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둘은 놀라고 서로를 위로하다가 어느덧 사랑을 나누는 동성 애인이 되었다.

한편, 어떤 두 남자가 윙키스 레스토랑에 왔는데 한 친구가 너무 무서운 악몽을 여러 번 꾸었다며 꿈에서 식당 뒤편 골목에 너무 무서운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가 그건 꿈일 뿐이라며 실제로는 없으니 가서 확인해보라고 하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 무서운 인물이 정말로 있었고,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죽는다.

새벽 두 시가 되자 베티와 리타는 실렌시오(침묵) 극장에 가고 거기에서는 ‘노 아이 반다’(밴드는 없다)라는 공연을 하고 있는데, 라이브가 아니라 녹음을 재생하기 때문에 불고 있는 악기를 입에서 떼어도 계속 연주 소리가 나거나, 노래 부르던 가수가 기절하여 쓰러져도 노래는 계속 들린다. 결국 예술이란 환상이라는 것이다. 감동하며 공연을 보던 둘이 집에 돌아왔는데 베티는 가방 속에서 파란 박스를 꺼낸 뒤 사라지고 리타가 세모 열쇠로 박스를 열면서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2부-

카우보이가 나타나서 자고 있는 여자를 깨우고 사라진다.

1부에서 베티였던 여자가 잠에서 깼는데 똑같은 외모지만 피곤하고 일그러진 표정이고 이름은 다이앤이다. 그녀와 집을 바꾼 여자가 찾아와 형사들이 다이앤을 찾아왔었다며 남아있는 자신의 물건을 가져가겠다고 하는데 그때 탁자 위에는 세모 열쇠가 놓여있다. 갑자기 리타의 얼굴을 한 카밀라가 보이고 다이앤은 “돌아왔구나!”라며 좋아하다가 환상임을 깨닫고 실망한다.

1부에서 리타였던 여자는 2부에서는 카밀라라는 배우이다. 다이앤과 동성 연인이었던 카밀라는 한때 서로 사랑했지만 이제는 감독인 아담 캐셔와 사랑에 빠져 다이앤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녀가 주연인 영화에서 다이앤은 단역배우 역할을 하는데 그것도 카밀라가 감독에게 배역을 부탁해서 겨우 들어간 것이다. 감독과 카밀라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큰 파티를 열고 다이앤도 초대한다. 그곳에 간 다이앤은 둘이 결혼할 것이라는 선언을 듣는다.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다이앤이 살인 청부업자를 윙키스 레스토랑으로 부른다. 그곳에서 커피를 가져다주는 웨이트리스의 이름은 베티였고 거기서 다이앤은 그에게 돈다발과 카밀라의 사진을 건네며 살인을 사주하고, 그는 작업이 끝났다는 증표로 세모 열쇠를 그녀의 집 탁자에 올려놓겠다고 말한다.

열쇠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다이앤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는데 이때 문틈으로 들어온 미니 노부부를 보자 패닉 하며 스스로 권총을 쏘아 자살하면서 침대에 쓰러진다.



1부의 인물들은 누가 보아도 비현실적으로 느낄 만큼 밝고 명랑하다. 그림자라고는 하나도 없는 표정이다. 2부의 인물들은 꼬이고 복잡하고 찌든 표정과 성격이, 남루한 현실 그 자체이다.

즉, 2부가 현실이고 1부가 꿈이나 환상이라고 보는 데 무리가 없다.

재구성한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다이앤과 카밀라는 배우이고 서로 사랑하는 동성 연인이었다. 카밀라는 주연급 배우이고 연인인 다이앤을 감독에게 부탁해서 작은 배역으로 영화에 출연시킨다. 새로운 영화를 촬영하는데 영화감독 아담 캐셔는 주연인 카밀라에게 반하고 카밀라도 이에 응해서 다이앤에게 이별을 통고한다. 카밀라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이앤이 불편하지만, 감독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파티를 열자 그녀를 초대한다. 그곳에서 감독이 카밀라와의 결혼을 발표하자 다이앤은 분노와 질투에 휩싸이고 카밀라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살인 청부업자에게 일을 맡긴 후 불안에 떨던 다이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리며 꿈꾼다. 환상 속에서 자신은 너무 아름답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여서 영화계에서 모두 원하는 사람이며, 감독은 다이앤에게 반해서 그녀를 뽑으려 하지만 외부의 강한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다른 배우 카밀라를 캐스팅한 것이다. 카밀라(리타)는 살인자들에게 죽을 뻔했지만 결국 살았고, 자신은 그녀를 최선을 다해 돕는다. 둘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 탁자 위의 열쇠를 본 다이앤은 자신은 여전히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삼류 배우이고 카밀라도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열등감과 질투에 못 이겨서 사랑하는 연인을 죽였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자신이 댄스대회에서 1등 한 후 배우가 되려고 결심했을 때의 소망과 순진한 초심을 상징하는 노부부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오자 견딜 수 없어하며 그녀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 죽음을 선택한다.

현실과 환상의 대비는 두드러진다.

현실의 다이앤은 초라하지만 환상 속의 그녀는 눈부시다. 환상 속에서는 그녀는 아름답고, 유능하고, 그녀의 사랑도 견고하고, 연인도 살아있다. 현실에서 살인을 사주한 다이앤은 그 일을 후회하며 환상 속에서 카밀라가 살아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또한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연인인 카밀라도 도와주고 싶다. 현실의 고모는 약간의 돈을 남기고 죽었으나 환상 속에서는 유명하고 돈이 많은 영화배우여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위치이다. 현실에서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영화계 사람들도 이름을 바꾼 채 모두 자신을 인정해주고 선망하는 사람으로 각색한다.

환상속 실렌시오 극장의 공연에서도 연기자와 상관없이 공연은 진행된다. 가수는 쓰러져도 녹음의 재생으로 노래는 계속되는 것이다.

예술과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작품은 연기자의 현실과는 다르게 만들어진다.


결국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현실과 환상, 예술가와 예술의 관계이다. 둘은 연결되어있고 서로 영향을 주지만 똑같지는 않다.

윙키스 식당의 두 남자의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환상과 현실은 이어져있으면 좋겠다는 다이앤의 소망이다. 그 남자는 꿈에서 본 무서운 사람을 현실에서 보고 죽는다. 다이앤도 꿈에서 카밀라를 살려놓고 사랑과 직업에서 성공하면서 현실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카우보이가 나타나 정신 차리라며 그녀를 깨우면서 그녀는 초라한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환상에서 다이앤의 시체를 보는 것은 결국 현실의 다이앤이 죽는 것과 연결된다. 환상 속 젊은 여자가 죽어있는 모습과, 살인을 사주하고 잠이 들어있는 다이앤의 모습과, 자살한 후 쓰러진 모습은 모두 똑같다. 다이앤은 카밀라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한 후, 침묵에 둘러싸인다. 성공과 사랑에 목말랐던 불쌍한 여자는 바꾸고 싶은 현실을 환상으로 버티다가 결국 못 견디고 영원히 침묵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창작자 또는 연기자의 잠재적 능력에서 끌어내진 모든 예술은 그들을 구원할것 같지만 그들의 행복과 안녕과는 상관없이 전시되고 공연된 후, 끝나면 무대와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침묵만 남을 뿐이다.

그래도 예술가들은 그 찰나의 구원을 위해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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