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남자 고등학생 라파엘이 있다. 매일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소설을 쓰지만 친구에게도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고등학생 올리비아가 있다. 수줍음을 많이 타서 남 앞에서는 연주하지 못하고 아무도 못 듣게 몰래 학교 창고 속에 있는 피아노를 친다.
라파엘이 우연히 피아노 소리에 끌려 학교 창고에 갔다가 둘이 마주치게 되고 건물 출입문이 닫히게 되자 같이 뛰어서 도망치다가 밖의 벤치에 앉게 되고 둘 다 기절했다 깨어난다.
다음날 창고에서 잃어버린 라파엘의 소설 ‘졸탄’을 다 읽고 돌려주려고 올리비아가 찾아오면서 둘의 사랑이 시작되고, 라파엘은 갑자기 머릿속에서 올리비아의 이미지가 소설의 여주인공으로 떠오르며 제목도 ‘졸탄과 섀도우’로 바꾸고 소설을 발전시킨다. 잘 맞는 그들은 일사천리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한다. 알콩달콩 살면서 여자는 남자의 소설을 항상 제일 먼저 읽고 소감을 말하고, 남자는 여자의 피아노 연주를 늘 옆에서 감상하고 콩쿨을 참관하고 격려한다. 어느날, 남자의 원고가 완성되자 여자가 그것을 출판사에 투고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어서 라파엘은 유명한 소설가가 된다. 정신없이 바빠지고 돈도 많아진 라파엘이 큰집에서 살게 되지만 점차 올리비아에게 소홀해지며 그녀의 연주회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위축된 올리비아는 연주가가 아닌 집에서 학생들에게 레슨을 하는 피아노 선생님을 하게 된다.
파티를 마치고 늦게 들어온 라파엘은 컴퓨터를 켜고 소설의 마지막 단계를 다듬는데, 악당이 졸탄과 그림자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라고 협박하는 순간, 잠시 망설이다가 섀도우를 죽이는 쪽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대화도 없어진 둘은 싸우고, 올리비아는 그녀가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그는 화가 나서 눈이 오는 거리로 나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잔다.
다음날, 잠이 깨어 눈이 내린 거리를 지나 사인회를 하기로 한 학교로 온 라파엘에게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고, 돌아온 출판사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그를 모른 척한다. 지나가는 버스의 광고판에는 유명 피아니스트 올리비아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고, 마침 지나가던 올리비아는 팬에 둘러싸여 사인을 하며 라파엘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는 자신이 다른 세상에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라파엘은 다른 세상에서는 유명인사였는데 여기서는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정하고 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잘 생각해보면 어젯밤 올리비아가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다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하면 모든 일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사귄 그녀의 모든 취향을 알고 있으니 그녀의 마음을 얻는 일은 쉬울 것이다. 지난 경험을 총동원하고 그녀의 할머니가 있는 치매 요양원에 잠입하여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을 만든다. 또한 그녀의 전기작가가 되어주겠다며 인터뷰를 가장하여 자주 데이트를 한다. 그러나 그녀가 좋아하는 물망초꽃다발을 들고 간 그녀의 집에는 이미 그녀가 오래 사귄 애인이 있었다.
그녀를 과거 고등학교 때 기절했던 벤치에 데리고 가보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그녀가 시골집에 피아노 연습을 위해 갈 때 동행하여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평행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주지만 그녀는 믿지 않는다. 그녀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일생에 한 번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들이 만약 10년 전에 만났었다면 잘 됐을 거라고 말하며 이별을 통보하고, 그는 자신이 지금 세계에 갇혀버렸다고 절망한다. 이때 그의 친구는 지금 이 세계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고 나 같은 친구도 존재하지 않느냐고 위로한다. 기가 죽어 학교에 출근한 그는 학생들이 소설에서 작가가 신처럼 주인공을 죽이는 게 싫다고 말하는 대화를 듣고, 그가 자신의 소설에서 여주인공 섀도우를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급히 서랍에 넣어둔 소설을 찾아낸 라파엘은, 결말을 섀도우가 아니라 자신인 졸탄을 죽이는 결말로 바꾼다. 이 원고를 들고 올리비아의 연주회에 찾아간 라파엘은 그녀에게 소설을 끝까지 읽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녀는 연주 시간이 다가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관객석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연주를 끝까지 들은 라파엘은 다시 그녀의 대기실로 가서 “널 사랑하는 순간이 내게 가장 빛나는 순간이야”라는 메모를 남기고, 원고를 가지고 연주홀을 떠난다. 이때 올리비아가 그를 뒤따라 나오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포옹한다.
과거에는 상상이라고 말했을 세계를 요즘은 평행우주, 대안우주, 다중우주라고 한다. 물리학적으로도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어차피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이론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이것이 개인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 즉 상상이라고 치부한다.
이 영화에서는 3개의 세상이 있다. 첫째는 라파엘과 올리비아가 사랑하고 살았던 세계, 둘째는 라파엘의 소설 속 세계, 마지막으로 둘이 관계가 없는 남인 세계이다.
라파엘은 그토록 사랑했던 올리비아에게의 감정이 식어가는 시점에, 또는 둘의 발전에서 균형이 깨지는 순간에, 잠시 멈추어 서서 미래에 대한 사고 실험을 한다. 둘의 사랑을 졸탄과 섀도우의 사랑으로 추상화한 소설 속에서 그는 먼저 올리비아의 상징인 섀도우를 죽여본다. 사랑보다는 자신의 발전을 선택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후에 펼쳐질 다른 세계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혼자 승승장구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둘의 사랑이 없으면 그를 격려하는 여성성이 없으니 그의 커리어도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니 거기서 그는 유명한 소설가가 아니라 평범한 문학교사가 되어있다. 오히려 그 세계에서 그와 상관없는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가꾸어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명예가 그리운 라파엘이 그녀의 사랑을 돌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쓰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래서 소설 속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서 이번에는 섀도우 대신 자신의 상징인 졸탄이 죽는 선택을 해본다. 그리고 올리비아의 연주회에 가서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그녀가 이토록 빛나는 사람인데 자기 때문에 희생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화려했던 세계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자기가 희생하기로 마음먹으니 오히려 사랑도 돌아오고 여성성을 회복한 그가 소설도 계속 쓸 수 있게 된다.
영화에서는 두 번째 세계에서 그녀와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결말을 보여준다. 한눈에 반한 사랑이 풋사랑이라면 두 번째 다시 반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첫눈에 반했던 두남녀가 세월이 흘러 호르몬의 마법이 멈추고 난 뒤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두번째 진정한 사랑을 맞는다.
두 번째 세계에서 올리비아는 여전히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것이고 라파엘도 소설을 다시 쓸 것이다. 둘은 사랑하며 같이 발전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결국 다시 위기의 시점으로 돌아온 라파엘이 2개의 세계를 머릿속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명하다.
동물도 감정을 가지고 사랑을 할 수 있고,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면, 인간이 그들과 다른 점은 과거와 현재의 경험으로 미래의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발전시켜서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그러니 현재의 상황만으로 앞일을 선택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