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올빼미>-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진실

왕보다 잘난 왕자

by 윤병옥

이 영화는 왕조실록의 기록에서 시작되었다. 소현세자가 청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를 흘리며 죽었다는 것인데 이는 독에 감염되었을 때의 증상과 비슷하여 독살설이 난무하였고 특히 아버지인 인조가 명했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안태진 감독은 이를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신화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왕들은 왕자를 죽인적이 있다. 중종과 인조와 영조가 그들인데 이 영화는 인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경수라는 침술사는 낮에는 눈이 보이지 않고 밤에만 볼 수 있는 주맹증 환자이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가 그저 아무것도 못보는 맹인이라고 생각한다. 병약한 동생도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 나라에서 궁중 침술사를 뽑는다는 방이 붙고, 절박한 그도 그곳에 시험을 보러 간다. 어의인 이형익이 직접 면접을 보고, 맥도 짚지 않았지만 환자의 걸음소리와 호흡소리만을 듣고 그가 중풍환자임을 맞춘 경수가 선발되어 이형익의 보조로 궁에 들어가게 된다. 왕비나 공주 등 궁안의 내명부를 진료할 때나, 비밀이 많은 왕실의 진료에 오히려 맹인이 꼭 필요한 터라 선발에 더 유리하기도 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조귀인에게 침을 놓고 인정을 받는다.

그즈음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가 청에서 8년 만에 귀국을 하고, 인조는 청의 신임을 받는 아들이 달갑지가 않다. 인조는 광해군이 서모 인목대비를 폐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죽여서 인륜을 저버렸다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되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스러져가는 명을 따르다가 청의 노여움을 사서 전쟁이 일어나고 백성들은 어려움에 빠지고 남한산성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하는 치욕까지 당하니 왕의 인기는 바닥이다.

그는 선조의 수많은 서자 왕자들 중의 하나인 정원군의 아들이어서 그다지 정통성을 갖지도 못했고 광해군 시절에는 혹시 자기도 화를 당할까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왔었다. 어려운 시절 조강지처와 서로 의지하고 여러 아들도 보았으나 왕이 된 후 중전이 아이를 또 낳다가 죽게 되고 상심하게 된다. 둘 사이의 큰아들인 소현세자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부부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에게 세자와 왕자를 볼모로 빼앗겼고, 왕은 중전이 죽은 후 후궁 조귀인에게 마음을 주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서 여러 음모를 꾸미는 여인이었다.

이즈음에 소현세자가 귀국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억지로 세자를 맞은 왕은 세자의 식견과 외교전략에 위협을 느낀다. 조귀인이 끊임없이 왕 옆에서 세자 편에 있는 신하들이 일으킬 위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인조는 너무나 불안했을 것이다.

긴 유배기간 동안 세자는 기침병을 얻었다. 세자는 밤에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자서 경수를 불러 침을 놓아달라고 했는데 경수가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경수는 세자에게 주맹증을 고백하고, 똑똑하고 인품이 있는 세자를 존경하게 된다.

왕은 어의에게 세자의 탕약을 달여 보내라고 하고 그것을 먹은 세자는 열이 올라 어의는 세자에게 침을 놓기 위해 경수를 데리고 들어간다. 이형익은 침을 놓고, 경수는 옆에서 열을 내리기 위해 물수건을 빨아서 땀을 닦는다.

그때 촛불이 다되어 꺼지고, 경수가 앞을 볼 수 있는 어둠이 깔린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독약 병에 꽂혀있는 독침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세자와, 물수건을 빤 대야에 퍼진 흥건한 핏물이다. 어의가 세자를 독살한 것이다. 맹인인 그가 살인사건의 증인이 되었다.

경수가 다시 세자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세자는 이미 죽어있고 정수리에 이형익의 독침하나가 아직도 꽂혀있는 것을 보고 그는 그것을 간직한다. 이때 빠진 침을 찾으러 이형익이 오고 그는 들킬까 봐 도망친다. 경수는 세자빈을 찾아가 이형익의 독침을 전달하며 그가 세자를 독살했다고 증서를 써준다. 그것을 가지고 왕을 찾은 세자비에게 오히려 인조는 며느리가 자신을 죽이려고 전복에 독을 탔다는 누명을 씌워 사약을 내린다.

세자의 아들인 원손은 왕인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였다며 실세인 최대감을 찾아가지만 이형익의 방에서 찾은 왕의 밀서 “열을 올리는 약을 먹인 뒤 독침으로 죽여라”는 왕의 필체가 아니었다. 치밀한 인조는 의심이 많아 평소에 증거가 될만한 서한은 남기지 않았고, 필요한 경우 왼손으로 글을 쓴 것이다. 이에 경수는 왕의 중풍 치료라고 하며 오른손을 마비시키는 침을 놓고 왼손으로 세자의 제문을 쓰게 한다. 그러나 모든 증거가 구비되었지만 왕과 대신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보장받고 서로 타협을 한다. 그들은 세자의 죽음은 학질이었을 뿐이라고 선포한다. 다음번 왕은 대신들이 원하는 왕자로 정하기고 하고, 원손은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고 할지도 모르니 멀리 귀양 보내서 천천히 죽이기로 한다.

세자를 존경하고 원손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던 경수는 주변 사람들의 덕으로 죽음을 면하고 동네에서 유명한 침술사로 지내다가 몇 년 후 인조의 중풍이 심해지자 다시 왕궁의 호출을 받는다. 반신 마비로 말도 못 하고, 침을 흘리며,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인조에게 경수는 정수리에 최후의 침을 꽂는다. 그리고 왕이 학질로 죽었다고 말한다.



예전에 영조에 관한 영화 ‘사도’에 관해 리뷰를 쓰면서 사도세자가 영조의 그림자라고 분석했었다.

마찬가지로, 소현세자는 인조의 그림자이다. 그는 자랄때 광해군이 자신을 죽일까봐 무서워서 자기의 장점이나 당당함은 철저히 억압하여 무의식에 그림자로 숨겨놓았다. 그 측면이 소현세자의 특성으로 보일때마다 그의 컴플렉스를 자극하며 그를 괴롭힌다.

페르소나와 자아의 상징인 왕으로서 영조는 능력 있고 잘난 인물임에 비해, 인조는 자격지심이 많고 능력 없는 인물이다. 따라서 영조의 그림자가 자유분방하고 예술과 무예를 즐기는 측면의 사도세자로 나타나는 반면에 인조의 그림자는 총명하고 자신감 있는 소현세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 맏아들이, 똑똑한 데다 중국의 실세 청나라와 신하들의 지지까지 받고 있으니 인조의 아들에 대한 질투심은 하늘을 찌른다. 자신이 반정으로 왕위를 차지했으나 명분도 뚜렷하지 않았고, 왕이 된 후에 치적도 별로 없고, 전쟁을 자초해서 백성을 도탄에 빠트렸으니 혹시 신하들이 자신을 반역으로 왕으로 만든 것처럼 왕자를 왕으로 삼고 자신을 내쫓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또한 영조가 아들을 죽였지만 명분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죽이고, 죽은 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아들인 정조를 세손으로 삼아 왕위을 물려주었던 것에 반해, 인조는 몰래 남을 시켜 아들을 죽이고, 부모를 죽인 것에 대한 손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어린 그들까지 제주도로 귀양 보낸다. 세자비도 사약을 내려 죽이고, 손자들은 타향에서 역시 수상한 이유로 불과 2년도 안돼 죽고 만다. 결국 아들의 존재 전체를 말살해 버린 것이다. 인륜을 저버린 것으로 보자면 광해군은 저리가라할 정도이다. 이렇듯 인조는 왕으로나 부모로나 정말 한심한 인간이었다.

합리적 의심으로 그쳤을 독살사건을 재구성하려면 가까이에서 그것을 보는 인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안태진 감독은 왕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로 맹인 침술사라는 캐릭터를 만든다. 그러나 진짜 맹인이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주맹증이라는 특이한 증상을 가정한다. 물론 현대의학적으로도 이런 증상이 존재한다고는 한다. 이것은 영화의 얼개를 만드는 데도 중요하지만 심리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의식이란 우리가 모르는 어두운 세계라서 이것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심리학적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낮과 밤의 세계가 다르듯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는 다르다. 그 어둡고 희미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존재가 주맹증을 앓는 천경수이고 그는 ‘자기’의 상징이다. 경수는 왕의 드러난 페르소나와, 소현세자로 표현되는 그림자의 세계를 모두 알고 있는 전지적 인물이다. 그는 세자를 잃은 뒤, 원손이라도 구하려고 그를 업고 뛰며 어떻게든 그림자 영역을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막강한 자아(왕)의 방해로 실패한다. 그리고 남루한 껍질만 남은 페르소나인 왕은 아들(그림자)보다 조금 더 연명하지만, ‘자기’인 경수가 나타나 왕을 제거하고 스스로도 사라진다.(경수가 왕이 죽은 후 사라지는 것이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현실로 볼 때 왕의 죽음을 재촉한 침술사를 왕실이 그냥 놔둘 리는 없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처럼 오래된 이야기들을 보면 아버지를 죽이는 모티브가 있고, 반대로 아들을 죽이는 모티브가 있다. 물론 상징이고 은유이다. 아들이 성장하여 아버지를 극복하고 능가하는 것이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의 함의이고, 아버지가 아들이 치고 올라와서 자신의 권력을 빼앗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 ‘아들을 죽인다’는 것의 함의이다. 이것들은 세월을 초월하여 반복되는 심리적 주제이다. 우리는 오이디푸스가 돌고 돌아 어떤 노인을 자기의 친부인지 모르고 죽이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더 세대를 올라가서 그 아버지 라이너스가 너무 나쁜 짓을 하여 신들이 벌로 자기의 아들에게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내렸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태어난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는 자세히 모른다.

결국 자식을 자식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나,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지 못하고 경쟁자로 보고 질투할 때 모든 것은 파멸로 끝난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대물림하면서 다른 비극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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