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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r 16. 2023

영화<사일런트 나이트>-인간이 마지막을 대하는 자세

It's Time to Die

     

우리는 내일이 생의 마지막일지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와는 격이 다른, 보통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노화나 질병이나 사고, 사회적으로는 전쟁이나 환경오염이나 기후 변화로 생은 반드시 끝나겠지만,  남은 시간이 특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의미한 크기의 소행성이 다가오거나 핵폭탄이 터지거나 해서 자신의 마지막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그런 상상을 하며 만든 영화가 있다. 거기에 영국식 유머를 곁들여 또 다른 생각거리까지 주는 블랙 코미디를 즐겨보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넬과 사이먼 부부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하기로 한다.

넬은 정성껏 립스틱을 바르고 침구를 정리하면서 친구들 맞을 준비를 한다. 넬의 친구와 동성 파트너가 도착하고, 철없는 친구 부부와 공주병 걸린 딸이 오고, 흑인 남자와 백인 약혼녀가 온다. 아들 아트는 마당으로 나가  닭장에서 키우던 닭을 풀어주고, 친구 딸이 꼭 먹어야 하는 푸딩이 없다고  하자 남자들은 슈퍼를 부수고 푸딩을 가져오겠다고 나간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다. 환경오염으로 생긴 독가스가 토네이도를 타고 퍼져서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그 가스를 흡입하면 눈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국민들에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약 EXIT를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식사를 하며 이 나라 국민이어서 약을 받고 위엄 있게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여왕은 지하벙커에 숨어서 개처럼 통조림만 먹고 살아남겠지만 부럽지 않다고 한다. 누군가는 독가스가 러시아가 퍼트린 게 분명하다는 음모론을 설파한다. 또는 환경을 보호하는 녹색당을 지지할 걸 그랬다고 이야기한다.

이 순간만큼은 사랑과 용서만 하자며 모두 즐겁게 보내기로 한다. 선물로 아끼던 에르메스 스카프를 친구에게 주고, 말하는 인형도 친구 딸에게 선물로 주지만 가지고 놀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평소에는 살이 찔까 봐 먹지 못했던 설탕 덩어리 쿠키도 죄책감 없이 먹는다. 물이 먹고 싶어도 수도에서는 구정물만 나오니 와인이나 캔에 들어있는 탄산음료만 마셔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비밀도 의미가 없다. 진실 게임을 하며 과거에 숨겼던 마음도 드러낸다.

점점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한 친구는 재앙 뒤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넬은 화상으로 엄마를 연결하여 마지막 인사를 한다.

흑인 친구의 여자친구는 임신한 상태인데 자신은 자기 손으로 아기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남자 친구는 아기까지 고통을 받을 거라며 약을 먹도록 설득한다. 친구의 동성 파트너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친구가 억지로 먹인 약을 토하고만다. 여분의 약도 없으니 파트너가 나중에 가스를 마시고 고통스럽게 죽을까 봐, 친구는 파트너를 칼로 찔러 죽인다.

    

유일하게 설득되지 않는 한 사람은 넬과 사이먼의 첫째 아들인 아트이다. 그는 자신은 죽음을 원치 않는다며 정부와 과학자들이 틀릴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죽은 다음 그 판단이 실수라고 사과해 봐야 소용없다며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부모도 아니라고 소리치고 밖으로 도망친다.

따라 나간 사이먼이 아트를 찾았을 때 근처에 있던 차 안에서 가스를 흡입하고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아트도 놀라 쓰러진다. 아들을 데려와서 침대에 눕히고 모두와 작별 인사를 한다. 쌍둥이 아이들은 약을 먹지 않으려 버티다가 아트가 침대에서 피를 흘리는것을 보자 놀라서 얼른 약을 삼킨다. 가족들 모두가 한 침대에 누워 마지막을 맞는다.

잠시 뒤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밖에는 눈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다.

     

그 순간, 아트가 번쩍 눈을 뜬다

     



세상의 종말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먼저 ‘돈 룩 업’이 연상되었다. 특히 두 영화에서 마지막에 가족과 친구들을 모아 파티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라도 마지막이라면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덜 떨어진 정부가 인간의 마지막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두영화가 마찬가지였다.

영화 ‘멜랑콜리아’도 떠올랐다. 거대한 행성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남편이 두려워하는 아내에게 처음에는 행성이 그냥 지나갈 거라며 위로하다가 진짜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것이라고 판명되자, 아내가 사다 놓은 수면제를 홀랑 먼저 먹고 자살해 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결국 용감한 척하는 인간들은 미지의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어떻게 죽을지, 그 뒤의 지구는 어떻게 될지 두려운 것이다. 결국 아내만 남아 동생과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마지막을 맞는다.

영화 ‘미스트’에서 주인공은 소중한 사람들이 외계생물에게 뜯어 먹히게 되는 끔찍한 순간에 직면해서, 그나마 짧게 고통받고 죽기위해 총으로 자살하려 하는데 총알이 한 발 모자라자 자신을 제외하고 아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총으로 쏘는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그러나 안개가 걷힌 후에 보니 이제 외계 생물들은 물러가서 안전한 상황이었다. 버텼으면 다 살았을 것인데 결과적으로 자신만 살아남았다. 그는 오열한다.

미래는 안갯속처럼 뿌옇고 불확실하다. 그러니 이렇게 용감하고 착한 사람들도 아무것도 모르고 잘못된 판단을 한다. 이 영화에서도 친구가 동성 애인을 칼로 찌른 것은 애인이 더 끔찍한 죽음을 맞는 것을 막으려고, 고통받지 않고 단번에 죽으라고 한 사랑의 행동이었다.

     

이렇듯  어른이라고 해도 또는 전문가 집단이나 정부라고 해도 제대로 아는 것도 별로 없이 대표로 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제한하기까지 한다. 또 어른들은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 문제를 일으킨 다음 해결도 못하고, 비겁하게 마지막을 대면하지도 못하고 회피한다.  

아트가 어쩌면 살아남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자식을 고통받게 할 수 없다며 결론을 내려놓고 죽으라고 강요한다. 멍청이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책임지게 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도 그들은 듣지 않는다.

따라서 혼자 살아남은 아트가 어떻게 살아가겠냐며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기존의 패러다임에 매여있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기성세대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다 죽은 다음, 아트 같은 새 세대가 깨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망쳐놓은 지구에서 살려면 힘들기는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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