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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l 03. 2023

영화<너를 정리하는 법>-과거와 제대로 이별하기

결국은 사람 정리

    

일본식 정리 열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다.

지나치게 단순화하자면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는 물건들은 모두 버리고 집을 비워라”라는 것이었다. 사실 쓸데없는 예쁜 쓰레기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모토이기도 했다. 잡지마다 텅 빈 내부공간이 얼마나 편안해 보이는가를 앞다투어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리할 것이 사실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매력적인 단발머리 태국 여자 주인공이, 인생의 한 지점에서 자신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통해 잔잔하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은 스웨덴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고 3년 만에 고국인 태국으로 돌아온다.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아직 사무실이 없어서 집에 사무실을 차리려고 하는데, 엄마와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온갖 잡동사니로 뒤덮여서 편안히 잠잘 곳조차 없다. 그녀는 가족의 2층집을 개조해서 아래층을 사무실, 위층은 살림집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려면 많은 것들을 치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녀는 쓰레기봉투를 한 무더기 사 와서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다. 집안이 쓰레기가 담긴 검은 봉투로 가득 찼을 때, 건축하는 친구 핑크가 와서 담긴 쓰레기들을 훑어보며 쓸만한 것들도 버릴 거냐며 물어보지만 진은 쿨하게 버리겠다고 한다. 핑크가 쓰레기봉투에서 꺼낸 음악 CD 하나를 보여주며 자신의 선물이었다고 하며 그 안에 써놓은 자신의 사인을 보여준다. 도로 가져가겠다며 서운해하는 핑크가 돌아가고, 그녀는 고물상에 싸놓은 물건들을 한꺼번에 넘긴다. 그러나 잠시 뒤 마음이 바뀐 진은 그것들을 도로 다 가져와서 봉투를 다 뒤져서 과거에 친구들이 자신에게 주었거나 맡겼던 물건들을 찾아서 친구 이름을 붙인 다음 하나씩 그들에게 돌려주러 다닌다.

     

오빠가 찾아준 물건 중에는 과거 남자친구가 준 카메라와 필름이 든 주머니가 있었다. 남자친구가 스웨덴에 가서 사용하라며 준 카메라를 그녀는 아예 가져가지도 않았었다. 그가 아직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직접 대면하기 싫은 진은 그것을 소포로 부친다. 그러나 소포는 수취인의 수령거부로 반송된다. 결국 그녀는 그것을 직접 가지고 옛날 남자친구인 아임의 집에 찾아간다. 진은 아임을 만나 자신이 아무 말도 없이 그에게 연락을 끊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의 카메라를 돌려준다. 그는 웃으며 그녀를 집에 데려가서 현재의 여자친구 미를 소개하고 진이 옛날에 자주 만들어주었던 옥수수 수프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함께 먹는다. 아임은 미와 함께 찾아와서 정리한 과거 물건들을 돌려고, 둘이 같이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다른 친구들 중 둘이 결혼하게 되었는데, 진이 과거에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사진을 찍어서 가지고 있다며 그 사진을 꼭 찾아서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진은 과거에 찍어서 보관한 사진 CD들을 찾아보다가 그것을 전 남자 친구 아임이 자신의 외장하드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에게 친구의 사진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진이 그 집에 가서 친구 사진을 찾다가, 과거에 다정했던 둘의 사진들도 다시 보게 된다. 사진을 찾아서 결혼하게 된 친구에게 전했지만, 아임의 여자친구  미가 찾아와 자신도 그들의 과거 사진을 다 보았다며, 울면서 아임과 헤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미안해진 진이 아임을 찾아가지만 그는 떠나간 미의 짐을 정리하면서, 진에게 그녀의 때늦은 사과는 자신의 죄책감을 벗으려는 이기적인 행동이었을 뿐, 자기는 진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며 차라리 죄책감을 끝까지 가지고 살라고 차갑게 말하며 카메라를 다시 돌려준다.

      

집안의 물건들은 대부분 처리했지만 집에는 과거에 가족을 떠난 아빠가 연주하던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엄마는 아빠가 떠난 후 정신이 나가서 흐릿해진 눈빛으로 대화도 없이 하루 종일 티브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내며, 심지어 리클라이너 의자에서 밤늦게까지 티브이를 보다가 그대로 잠드는 날이 많아서 허리도 좋지 않다. 한때는 다정했던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피아노를 처분하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딸의 목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엄마에게 피아노를 처분하자고 말해보지만 그녀는 완강하게 거절하고, 본인이 알아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으니 딸이 개입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결국 오빠에게 엄마를 데리고 외출하라고 시킨 후 진은 피아노를 팔아서 없애 버린다.     

자신의 방에 아임의 카메라를 포함해 최후까지 남은 과거의 흔적들을 오빠에게 버려달라고 부탁한 후, 진은 호텔에 와서 새해전야를 지내며 창밖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아빠가 들어있는 가족사진을 찢어버리고, 휴대폰 친구목록에서 아임을 삭제한다. 

짐을 모두 치우고 고친 집은 미니멀리즘의 끝판을 보여주는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주인공 진은 스웨덴으로 유학해서 공부했고 북유럽의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디자이너다. 쓸데없는 가구나 소품 말고 꼭 필요한 것만 있는 미니멀한 공간을 디자인하려고 한다. 미니멀리즘은 태국의 종교인 불교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집도 그렇게 정리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물건에는 기억과 감정이 녹아있다. 처음에 그녀는 모든 것을 쓰레기봉투에 담아버리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정리가 아니다. 소중한 기억과 감정은 소환하여 예의를 다해 인사를 하고 이별해야 한다. 그것을 깨달은 진은 다시 버리던 짐들을 다시 가져와서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물건과의 이별 이전에 그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이 과거에 사귀던 남자친구와의 이별과 사과를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그녀는 그와 헤어진 것이 아니라 유학을 가는 형태였는데 스웨덴에 도착하면서부터 연락을 끊어버렸다. 아마도 그전에 이별을 결심했겠지만, 비겁하게 피하다가 유학가면서 사라지는 방식을 택했다. 그가 얼마나 절망했을지 알면서 그녀는 잠수를 해버린 것이다. 사랑은 둘이 했는데 이별과 사과는 일방적이었다.


그녀가 비난하는 엄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빠가 떠난 후 엄마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고 있다. 아빠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아빠를 상징하는 피아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빠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릴수 없어서 그녀는 아무와도 눈맞추지않고 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아빠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둘 다 사람과의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 못하고  순간에 정지해 있다.

     

정리는 단번에 해치우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물건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건이 가진 기억과 감정을 소화하고 보내는 작업이 정리이다.

한때는 행복했던 과거와 제대로 작별을 해야 미래를 맞을수 있다.

엄마는 피아노가 없어져서 당장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아버지를 상징하는 피아노를 더이상 보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다른 방식으로 맞이할 것이다. 

진은 카메라를 버리고 연락을 끊으면서 아임과 제대로 이별을 하고 다음 단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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