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해서 사회 비판적인 의미가 들어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실제로도그랬다. ‘기생충’에서 멋진 저택의 주인과, 반지하에 사는 사람과,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에 사는 사람으로 비유되었던 계층이 여기서는 호화 요트라는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뉜다.
주인공인 모델 남녀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사회의 계층 구조와 상위 계층의 몰상식과 무개념도 구경하고 짜릿한 반전과 씁쓸한 결말까지 감상할 수 있는 블랙코미디이다.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야는 탑모델이면서 인플루언서이다. 애인인 칼도 모델이지만 이제는 약간 하향세를 타고 있는 상태이고 야야와 지내면서 그녀의 특혜도 함께 누리고 그녀의 일상을 옆에서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을 돕는다.
보통 여자 모델의 수입이 남자 모델 수입의 세배나 많다고 하고 또 현재 모델계에서 탑 수준인 야야의 수입이 훨씬 많지만, 그녀는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교묘히 식사비를 내지 않으며 칼이 계산하도록 만든다. 이에 화가 난 칼이 평소에는 야야가 평등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로 행세하면서 왜 남자에게 밥을 당연히 얻어먹으려 하는지에 대해 따진다. 둘은 말싸움을 하다가 결국 야야는 자신이 여성 모델로서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상대방이 나중에 돈을 벌 수 없는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남자인지를 시험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둘은 화해한다.
인플루언서 모델인 둘은 요트회사에서 홍보를 위해 공짜로 태워준 요트에 탑승하고 여기서 초부자 승객들을 만나는 기회를 갖는다. 휘황찬란한 명품 의상과 액세서리를 휘감은 승객들에게 비위를 맞추는 흰색 유니폼의 승무원들은 승객의 어떤 불합리한 요구도 거절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았고, 마루 바닥에 광을 내고 객실과 화장실을 청소해 주는 검은 유니폼을 입은 잡역부들이 선체의 바닥 부분에 머물고 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사진 한번 찍어준 여자들에게 롤렉스 시계를 선물하겠다고 하는 남자도 있고, 똥(비료)을 팔아서 번 돈으로 아내와 애인을 동시에 데리고 요트에 온 러시아 출신 자본주의자도 있고, 수류탄과 지뢰를 만들어 돈을 끌어모으며 자신들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부부도 있다. 요트의 선장은 역설적으로 속물 부자들을 혐오하는,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속물 승객들이 꼴 보기 싫어서 선장실에 틀어박혀 술이나 먹고 책이나 보는 인물이다.
선장은 일부러 선장과의 만찬 일자를 일기예보에서 파도가 친다고 한 날로 잡는다. 만찬에서 초호화요리가 나오고 승객들은 드레스와 보석으로 치장하고 앉아있지만, 파도로 인해 요트가 요동을 치자 그들은 뱃멀미를 하며 사방에 분수를 뿜듯 토하고, 화장실 변기는 똥물을 내뿜으며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운다. 설상가상으로 근처에 있던 해적선이 수류탄을 쏘며 공격을 한다. 마침 수류탄은 그것을 만드는 부자 부부의 앞으로 떨어져서 폭발한다.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의 일부가 근처의 무인도에 표류하여 살아남는다. 대책도 없이 앉아있던 그들에게 구명정 한 대가 해변으로 떠내려오는 게 눈에 띈다. 그 안에는 화장실 청소부 에비게일이 타고 있었고 그들은 그 안에 들어있던 비상용 물과 스낵을 나누어서 먹는다. 그러나 식량은 떨어지고 부자들과 모델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일을 할 줄 몰라서 에비게일이 혼자 바닷속에 들어가 물고기와 문어를 잡고 불도 피우고 요리까지 해서 나누어 먹게 된다.
이때부터 그들은 전적으로 에비게일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녀는 “부자들처럼 하는 일 없이 얻어먹기만 하면 안 된다”는 명언과 함께 자신이 섬에서는 지도자라고 선언하는데, 아무도 거기에 반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에비게일이 구운 생선과 프레츨 과자에 비굴하게 아첨하게 되고 심지어 잘생긴 모델인 칼은 밤마다 그녀에게 불려 가서 생선을 대가로 받고 몸을 팔고 애인인 야야도 프레츨 과자를 받고 이를 묵인한다.
야야가 섬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무언가 찾아보겠다고 하자 에비게일이 자신도 동행하겠다고 한다. 산을 넘어가서 섬 반대편에 도착한 야야는 무인도인 줄 알았던 이 섬이 사실 호화 리조트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편 해변에는 리조트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이때 에비게일이 같이 올라가자는 야야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몰래 커다란 돌을 들고 바다를 보며 앉아있는 야야의 뒤통수로접근한다.
둘이 산에 같이 가는 것이 불안했던 칼은 뒤늦게 그들의 뒤를 쫓아 산길을 달려간다.
영화의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이란 사람들이 슬퍼서 울며 찡그릴 때 미간에 생기는 주름이 삼각형 모양으로 잡히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 광고회사 직원들이 모델 칼에게 표정에서 슬픔의 삼각형을 없애라고 할 때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삼각형은 자본주의 사회 세 계층의 꼭짓점을 말한다. 돈이 돈을 벌어주는 최상위 부자들과, 적당한 교육을 받았지만 자산은 없어서 고용주의 비위를 맞추고 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월급쟁이 승무원들과, 가진 것은 노동력밖에 없어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각각의 점에 위치한다.
그리스 시대에도 자유인은 돈이 많아서 노예를 부리던 귀족 남자들이었던 것처럼, 현대에도 돈을 가진 부자들만 자유를 누린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고른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의상을 입지만 승무원들은 정해진 흰색 유니폼만을 입어야 하고, 잡역부들을 검은색의 유니폼만을 입는다.
삼각형의 구조상 두 점을 연결한 한 변이 지면에 닿고 꼭짓점 하나가 위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라미드 구조와는 다르다. 꼭대기 꼭지점을 제외하고는 그들을 받치는 두꼭지점의 차이는 미미하다.
당연히 현실 세계에서 자본을 가진 부자들이 꼭대기에 위치한다. 이것을 바꾸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혁명이 일어났을 때이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때 이 구조는 잠시지만 바뀌었었다. 영화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요트를 가정했고, 혁명 대신에 요트가 좌초되는 사고가 생겨서 사람들이 무인도에 가게 되었을 때 꼭대기가 바뀌는 구조를 보여준다. 세 꼭짓점을 연결한 끈은 변고가 생겼을 때 풀어져서 세 계층은 잠시지만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 비바람과 파도로 인해 요동치는 요트 안에서 승무원들은 멀쩡하게 요리접시까지 들고 균형을 잡지만 명품으로 휘감은 부자들은 토사물과 똥물이 넘치는 바닥에 넘어져 뒹군다. 무인도에서 아무 일도 할 줄 모르는 부자들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화장실 청소부를 하던 에비게일만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모닥불을 피우고 요리까지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부자 계층의 사람들도 전혀 유리한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무능과 위선과 속물근성을 확인하고 그들이 겪는 고초에 고소해 할 수 있는 것은 예술 세계 속에서일 뿐, 영화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섬이 무인도가 아니라 리조트였을 뿐이어서 다시 문명세계로돌아간다면 당연히 에비게일의 천하가 끝날것이고, 그녀가 자신이 차지한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모델 야야를 죽이더라도, 걱정이 되어 쫓아온 칼이 그녀를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므로 결국 에비게일의 짧은 천하는 끝나게 되어있다. 그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