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쿄!>-흔들리는 도쿄, 무너지는 경계선

너를 만나는 순간

by 윤병옥

누가 들어도 거장이라고 생각할 감독인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가 일본의 도시 도쿄의 인상에 대해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었다. 세 파트 모두 재미있고 인상적이었지만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가 다가와서 나를 흔들었다.

대도시가 가지는 분위기인 익명성이 영화에 드러나고, 사람은 많지만 정작 진정한 관계는 없는 대도시의 소외된 존재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년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가 ‘히키코모리’이다.

주인공은 10년째 집에 틀어박혀 있는 히키코모리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들을 보기가 답답해서인지 아버지는 나갔고 생활비만 꼬박꼬박 부쳐주고 있다.

주인공은 과거에는 사회생활을 했으나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게 되었고, 보통 방에만 있는 히키코모리와는 다르게 혼자서 집을 쓰고 있다. 또 매스컴에서 보았던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게임만 하고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모든 물건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리해 놓았고 티브이는 전혀 보지 않고 수많은 책들을 모두 읽고 정리해 놓은 상태이다. 즉, 타인과 만나지않을 뿐, 자신만의 공고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싱크대 앞에 서서 빨리 먹고, 일주일에 한 번은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다. 그가 배달 음식을 받는 방법은 문을 조금만 열고 배달원을 결코 쳐다보지 않고 재빨리 물건과 돈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피자를 받을때 눈을 내리깔고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으려는 순간, 배달원의 짧은 숏팬츠 아래 가터벨트가 보이는 바람에 놀라서 배달원의 얼굴을 보는 사고가 생긴다. 이때 갑자기 도쿄에 강한 지진이 일어난다. 놀란 배달원은 현관에서 기절해서 쓰러진다. 10년 만에 타인이 그의 집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는 그녀를 깨우는 과정에서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그녀의 몸에는 문신으로 여러 가지 단어와 그 옆에 스위치가 그려져 있었다. 그중에 ‘coma’라는 단어 옆의 스위치를 누르자 그녀가 깨어나고 집안으로 들어와 정돈된 그의 집을 감탄하며 구경한 후 떠난다.

이후 그는 다음 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2일 만에 피자를 주문하고 배달하러 올 그녀에게 걸 말을 미리 연습하고, 단정한 옷을 입은 후 그녀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번 배달원은 그녀가 아닌 피자집 사장이다. 그는 배달원들이 다 그만두고 히키코모리가 되었다고 화를 내며 그녀의 주소를 가르쳐준다

그가 옷을 입고 몇 번을 주저하다가 햇빛이 환해서 눈이 부신 거리로 발걸음을 어렵게 뗀다.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탓에 버스비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잊어버려서 마당에 처박아 두었던 자전거를 꺼내보지만 10년이 된 자전거에는 식물의 넝쿨이 감겨 탈 수 없는 상태이다. 밖에서 본 그의 집도 온통 담쟁이넝쿨로 덮여 있다.

거리는 텅텅 비어있고 피자 배달 로봇만 왔다 갔다 한다. 그는 그녀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동네에서 여러 집들을 들여다보니 자신과 같은 히키코모리들이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들이 몇 년 째 그런 생활을 했는지 직감적으로 안다. 드디어 그녀의 집을 발견했지만 그녀는 나오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는 그녀에게 “지금 안 나오면 평생 못 나와요!”라고 외친다.

그때 또다시 지진이 발생하고, 뛰어나온 그녀를 붙잡고 그녀의 문신 중 ‘love’라는 단어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녀는 “흔들린다”라고 말한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본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 높기로 유명한 도쿄를 텅 빈 거리로 묘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키코모리라고 생각하는 봉준호의 상상력이 놀랍다. 도쿄는 어깨를 부딪쳐야 걸을 수 있는 붐비는 거리지만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하나도 없는 대도시라는 것이다. 지진이 났을 때 갇혀 있던 사람들이 뛰쳐나와 거리에 가득 찬 모습은 이 시대에 외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스스로의 세계에 갇힌 사람이다. 그 상황을 물리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주인공을 히키코모리로 설정한다. 주인공은 그 사회를 대표로 보여줄 뿐 특이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히키코모리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찾으러 갔을 때 보이는 동네의 히키코모리들의 모습은 과거 주인공이 보낸 세월들의 흔적이다. 그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최소한의 교류만 하고 산다. (교류가 전혀 없으면 생물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영화에서 생활비를 주는 사람은 아버지이지만, 어쩌면 영혼 없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주는 월급이라도 이야기는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어떤 사람과 눈을 맞추는 사고가 났다는 것은 그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난 것과 같다. 그것을 작가는 지진으로 표현한다. 열린 마음의 틈 사이로 그녀가 밀려 들어온다. 그녀가 그의 집 내부를 보고 감탄한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 세계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기다리던 주인공은 그녀도 히키코모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영화 속 대사처럼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려면 방법은 하나뿐인 것이다. 그는 그녀를 위해 기꺼이 집 밖으로 나와 거리를 달린다. 자신의 세계를 깨트린 것이다.

나오기를 거부하던 그녀의 손을 그가 놓지 않았을 때, 또 한 번 지진이 일어난다. 그녀의 세계에도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그녀를 찾아낸 그가 ‘사랑’이란 버튼을 누르고, 그들은 드디어 그것을 시작하려 한다.

히키코모리가 살아남으려면 다른 히키코모리를 만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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