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페르시아어 수업>-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의미

언어의 발명

by 윤병옥

유태인의 비극적인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있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조조 래빗’, ‘피닉스’ 등등 감독마다 다른 시각으로 참상을 그렸는데, 바딤 피얼먼 감독은 각본가 볼프강 콜하세가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단편 ‘언어의 발명’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의 영화를 만들었다. 큰 플롯과 서브 플롯을 따라가면서 관객이나 독자가 어떤 쪽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은 벨기에에 사는 유태인으로, 도망치다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중이다. 옆에 앉은 다른 유태인은 질에게 샌드위치 반쪽과 자신이 가진 값진 페르시아 책 초판본을 바꾸자고 한다. 마지못해 책을 받고 들춰보니 커버 안쪽에 ‘레자 준’에게 ‘바바’가 주었다는 서명이 있었고, 그는 ‘바바’란 페르시아어로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얼마 후 독일군들은 유태인들을 트럭에서 내리게 하고 무차별 총격으로 죽이는데, 질은 페르시아책을 보이며 자신은 유태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한다. 마침 독일군 대위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찾아오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군인들은 질을 살려서 수용소로 데리고 온다

독일군 대령 코흐는 질이 가진 페르시아 책을 보며 그를 페르시아인 레자 준이라고 생각하고 주방에서 일을 마치면 자신의 방으로 와서 언어 수업을 하라고 한다. 하루에 단어 4개씩을 가르쳐주고 그것을 매일 외우면 1년에 약 1000개, 전쟁이 2년쯤은 갈 테니 약 2000개 정도의 페르시아 단어를 외워서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질이 아는 진짜 페르시아어는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바바뿐이었으므로 그는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 내야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단어를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자신도 계속 기억해야 거짓말이 탄로 나지 않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질은 대령에게 가르친 단어를 수용소 숙소로 돌아와 밤새 외운다.

대령은 수용된 유태인의 명단을 작성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여군이 그 일을 신통치 않게 하자 질에게 그 일을 맡긴다. 그 명단을 작성하던 중 나열된 이름들을 보다가 거기에 약간의 변형을 하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명단을 보면서 자신도 단어를 상기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단어가 쌓여가고 둘은 그 언어로 둘만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고 사물 이외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만든다. 더 지나서는 추상적인 개념의 단어도 만들고 대령은 그 언어로 시도 지어서 질에게 들려준다.

수업이 진행되며 둘의 관계도 발전해서 코흐는 질이 오면 먹을 것을 주고, 그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의 배고픈 기억 때문에 요리사가 되었고 나치가 되면서 동생과 사이가 나빠졌는데 동생이 테헤란으로 갔고 자신도 그곳에 가서 식당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질이 다른 곳으로 이송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이송되지 않게 막아주기도 한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무가 페르시아어로 뭐냐고 갑자기 묻는 바람에 질이 빵에 이미 썼던 '라지'라는 단어를 말하자 대령이 의심하고 그를 거짓말쟁이라며 심하게 때린 후 채석장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질은 죽어가면서도 가짜 페르시아어로 엄마를 찾으며 신뢰를 회복하고 대령은 그 후 더욱 질을 믿고 아끼며 대위님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까지 한다. 친해진 질은 대위가 많은 유태인들의 이름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살인자들을 먹여 살리는 방조자라고 비판한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수용소의 포로들을 처치하고 퇴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독일군들이 남은 사람들을 사살하게 되는데 코흐는 질을 구출하여 밖으로 나와 숲으로 도망치다가 자신은 페르시아로 가는 비행장으로, 질은 연합군 막사로 각기 갈라진다.

코흐가 공항에서 그동안 배운 유창한 페르시아어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만 당연히 알아듣는 사람은 없고, 결국 독일인임을 의심받아 체포된다. 절망과 배신감에 어쩔 줄 모르는 그의 표정이 압권이다.

한편, 질은 수용소에 누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자신이 외운 단어의 원천인 유태인의 이름 2840개를 부른다.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영상도 있고, 수용소의 참상을 재현해서 보여주는 영화도 있고, 예술가의 입장에서, 혹은 연인의 입장에서, 레지스탕스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그곳의 고통을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희생된 사람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간절히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나를 질이라는 인물을 대표로 해서, 언어 수업이라는 소재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실화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각본가가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대로, 모티브는 실화에서 따왔겠지만 이미 단편에서도 각색이 들어갔고, 장편으로 발전시키면서 또 많은 가상 인물과 구조가 추가되었을 것이다. 만일 질이 실제 인물이라면 그의 관점으로만 이야기해야 하니 씁쓸한 웃음을 준 코흐의 공항 장면을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책을 입수한 과정, 대위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설정, 명단을 작성하는 여군이 악필이었던 점 등, 수많은 우연의 중첩은 이 이야기의 디테일이 픽션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존재였음을 이야기하려는 의도로 만들었고,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나를 서브플롯으로 보여주면서, 코흐가 마지막에 처한 상황에서 웃음까지도 주는, 어른들을 위한 우화로 보인다


원제인 ‘언어의 발명’에서 알 수 있듯 언어학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흔히 언어란 민족이나 부족 단위의 소통 수단이지만 최소 두 사람 이상이면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연인들이 그들만 아는 언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영화에서도 질과 대위 둘만 아는 언어가 탄생한다

또 먼저 사물에 대해 일 대 일 대응으로 단어를 만들어내고, 다음에 대명사를 만들고, 감정에 대한 단어를 만들고, 점차 추상적인 단어를 만들어가는 어휘의 발달 과정도 보여준다.

아기들처럼 명사 단어만 말하다가 동사나 형용사 등의 서술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완성하는 발달과정도 보여준다.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해서 시 같은 문학의 영역으로 까지 발전시키는 과정도 포함된다.

공부 시간이 길어지면서, 둘은 일상뿐 아니라 감정적인 대화까지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경지에 이른다.


단어의 기초가 된 유태인들의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름은 존재의 상징이다. 코흐 대령은 질의 이름을 알게 되고(물론 가짜 이름인 ‘레자’로 부른다) 그를 인간으로 존중하지만, 다른 유태인의 이름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들을 사물화 한다. 그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으니 무슨 대접을 받는지, 어떻게 죽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질도 코흐를 수단으로 이용할 뿐 그를 존중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질이 처음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거짓말을 한 것이지만 대위가 자신을 끝까지 살려주고 좋아했는데도 마지막까지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질이 끝까지 대위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그도 코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다. 그러나 자신은 코흐의 덕분에 살아남았는데도, 코흐가 나중에 엉터리 언어로 당하게 될 위험한 결과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러니 상대방을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직급이나 역할로 부르지말고 그의 이름을 불러야할 것이다.

질이 처음에는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거짓말로 언어를 창조했지만, 창조의 근원을 동족인 유태인들의 이름으로 하고 그것을 기억했다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초인적인 힘으로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살고 싶다는 의지는 대단하다. 그러니 살아남은 자들은 허무하게 죽은 자들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는 것이어서, 자신의 삶에 그들의 몫까지의 무게를 더하여 살아야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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