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천문>-함께 별을 보는 친구

인간 이도와 영실의 우정

by 윤병옥

역사 시간에 배운 세종 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위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신화에서 읽는 영웅이 현실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똑똑했고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특출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신화의 영웅들과는 달리 그들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업적에 가려서 비현실적인 존재로 느껴졌을 뿐이다.

여기에 예술하는 사람들이 그 인물들에게 뼈와 살을 입혀서 우리에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준다. 역사에 기록된 듬성듬성한 팩트에,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빈틈을 메꾸어 그들을 생생한 인간으로 만든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종은 조선의 백성들이 먹는 것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깨인 존재로 살기를 바란 성군이었다. 그래서 그는 쉬운 문자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주려고 하였고, 그들의 생업인 농사도 과학적으로 짓게 하려고 노력했다.

조선 시대에도 하루는 24시간이었겠지만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는 해시계뿐이었다. 해가 뜬 맑은 날 낮에만 시각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왕, 세종은 노비의 자식 출신인 장영실을 시켜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게 한다. 그 시대의 천재 과학자이며 공학자이던 장영실이 그것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고, 세종은 백성들이 밤에도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고 밤에도 종을 쳐서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린다. 또 농사에 필요한 절기를 알려면 천구에서의 별자리의 위치가 중요한데 그 당시 조선은 경도도 다른 명나라에서 보낸 천구의에 있는 절기를 따르니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장영실이 왕의 명령에 따라 조선에 맞는 천체 운행을 볼 수 있는 혼천의도 만들게 되고 세종은 기뻐하며 재주 있는 그를 너무도 기특하게 여긴다.


왕이란 제1의 권력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아래에 두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정치관이나 학문적 관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없는, 실로 외로운 존재이다. 그런데 자신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며 이야기를 나눌수 있고 실제로 기구를 척척 만들어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이 간다. 실제로 세종은 장영실을 늘 내관처럼 가까이 두고 대화했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백미였던 둘이 같이 별 보는 장면이 탄생한다. 근정전 앞이 텅 비어있는 밤에 세종은 홀로 근정전 밖에 자리를 깔고 앉아 별을 보다가 장영실을 부른다. 둘이 누워서 별을 보다가 영실은 북극성이 세종의 별이라고 하고, 세종은 그 옆의 별을 가리키며 영실의 별이라고 한다.

또 비가 오는 날 편전에서 세종이 영실을 부르고 방에서 대화하다가 별이 보고 싶다고 하자, 영실은 창호지에 먹칠을 하고 별자리 위치대로 구멍을 뚫은 다음, 밖에서 호롱불을 비추어 구멍으로 새어 들어온 빛으로 별을 재현하고 세종의 별에 표식을 한다.

비천한 신분을 가진 영실의 특출난 재주를 시기하기도 하고, 명나라가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학을 달가워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기도 한 신하들의 반발도 만만치가 않다. 여기에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 편찬도 사대부의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 그들은 영실을 명나라로 보내서 대국의 노여움을 달래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세종은 영실을 멀리하고 궁궐의 기구들을 관장하는 부서로 발령을 낸다. 영실은 왕의 가마인 안여를 만드는 책임자로서 관리를 한다. 그런데 세종이 요양차 온천으로 갈 때 그 가마를 타고 가다가 부서지는 바람에 왕이 낙상을 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영화에서는 세종 자신이 몰래 가마의 바퀴를 일부러 느슨하게 만들어 빠지게 한 것으로 설정한다. 왕은 이 사고를 누군가가 가마 바퀴의 나사를 빼서 왕을 죽이려한 역모라고 규정하고, 이를 빌미로 삼아 자신의 뜻에 반발하는 신하들을 내칠 궁리를 한 것이다. 그러나 왕의 마음을 읽은 영의정이 영실을 보호해 줄 테니 훈민정음 반포는 하지 말아 달라는 협상안을 제시하고, 왕은 영실을 위해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영실은 세종이 백성을 위해 만든 한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으므로 자기만 살자고 그 제안을 받아들일수가 없다. 그는 자신이 가마를 고장 냈다고 허위로 자백을 하고 곤장 80대의 형벌을 받는다. 자신의 희생으로 훈민정음 반포의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형장에서 세종이 눈으로 말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영실아 무엇이 보이느냐?” 영실이 눈으로 대답한다. “전하가 꿈꾸는 나라가 보입니다. 부디 꿈을 이루소서.”



이 영화는 역사적인 팩트와 예술가의 픽션이 합쳐진 소위 ‘팩션’이다.

여기서 팩트는 장영실이 뛰어난 과학자로 여러 천문 기구를 만들었다는 것과, 세종과 영실이 가까이 지내며 대화를 많이 했다는 것과, 영실이 만든 안여(왕의 가마)가 부서졌다는 기록과 그 때문에 1442년 영실이 곤장 80대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 후에 장영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고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은, 과거의 영실의 실력으로 보아 가마의 바퀴를 고정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과, 만일 곤장을 맞고 죽었다면 죽었다고 기록했을 텐데 그런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세종이 그를 죽이지 않고 숨어서 살게 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또 외로운 왕이 대등하게 과학을 함께 논할 수 있는 친구와 자주 대화하며 너무나 행복했을 거라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우정을 통해서 공중에 떠 있던 위인 세종대왕이 피와 살을 가진 따뜻한 실제 인물로 보이는 순간을 만들었다. 바르게 생기고 발음도 정확해서 전생에 왕이었을 것 같은 한석규 배우와, 천출인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후원해주고 인간으로 대해주는 왕에 감동하는 투박하지만 순수한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신분을 초월한 두 사람의 우정에 숨을 불어넣었다.

허진호 감독은 멜로 영화의 대가답게 인간 이도와 영실의 우정을, 같이 별을 보는 장면으로 구체화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것이 뜬금없는 상상은 아닌 것이, 실제 왕은 별자리에 관심이 많아서 조선의 천체 운행을 알아보라고 영실에게 주문했고 둘 다 별 보는 것에 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먹지에 구멍을 뚫어 뒤에서 빛을 비추게 해서 별을 만들어낸 것은 영화를 만든 예술가들이 창조고유한 상상이었을 것이고 내내 감탄하면서 그장면을 보았다. 둘은 북극성은 왕의 별, 그 옆의 별은 영실의 별이라며 표식을 한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의 노랫말이 떠올라 살짝 오그라들지만, 감동하며 부끄러워하는 영실의 표정이 순진하여 보는 관객들도 달달하다.

어차피 다큐멘터리도 아니니 영화에서 객관적으로세종대왕의 모든 업적과 인생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이영화는 세종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천재 장영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인 것이다.

팩트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일 때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이견을 가질 수도 있다. 일례로 이 영화에서는 세종이 자주적으로 명나라에 저항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명과 척지지 않으려고 재위기간 내내 노력했다고 한다. 당연히 왕이라면 개인적인 감정보다 나라의 실익을 위해 위험을 초래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것을 제외한다면, 크게 실제 기록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세종의 여러 치적중 과학자 영실과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영화 덕분에 후손들도 세종대왕을 위인이 아닌 따뜻한 인간 이도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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