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력이 떨어지고 살림을 놓게 되시는 순간이 왔다. 마지막 몇년은 요양보호사님과 내가 두 분을 전적으로 도와드리다가 한계에 이르러 결국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요양원에 들어가시기까지의 결정 과정이나 요양원 알아보기, 요양원 입소 조건 구비등 복잡한 일이 끝나자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비우고 정리해야 하는 더 복잡한 단계가 왔다.
90여 년을 살아오신 분들의 물건들은 특별히 비싼 것은 없더라도 모두 두 분의 손때가 묻어있는 것들이어서,거기에 들어있는 기억과 감정이 물건과 분리가 되지 않았다. 그것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부모님의 인생을소환하여 나의감정을 많이 흔들었고, 대부분의 것들을 버리는 일을 할 때는 부모님의 일생을 부정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오빠들은 멀리 있거나 일이 바빠서 결국은 내가 해야 했는데, 그때의 감정 소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형제들끼리 모여서 같이 정리하며 물건에 얽힌 추억도 이야기하고 나누어 가져갈 것은 가져가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왜 나 혼자서 이걸 다 감당해야 하는지 너무 속이 상했다.
아버지가 노년에 많은 시간을 바쳐서 하셨던 서예 작품이 많이 있었는데, 모두 우리 집에 가져오는 것은 무리여서 일부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써서 주신 작품이 이미 우리 집에 걸려 있어서 다른 것을 걸 공간이 없었지만 내 방의 벽에라도 세워놓으려고 일부 작품을 들고 왔다. 아버지의 벼루랑 붓도 아버지 손길이 자주 가던 것이라 내가 챙겼다. 아버지 유전자를 받은 딸인 내가 혹시 나중에 서예를 할지도 모르니 그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옷장을 정리해서 동절기에 입을 옷들을 정리해서 요양원에 넣어드리고, 하절기 옷들은 싸서 나중에 갖다 드리려고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엄마가 역시 여자여서 옷에 관심이 많은 편이였고 가끔 나와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가고 싶어 하셨으나잘 들어드리지 못했는데, 그렇게해드릴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요양원에 싸다가 드린 옷들도 거의 입지 못하셨다. 거기서는 간편한 생활복을 입는 경우가 많아서 예쁜 옷들을 입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싸놓았던 아버지 여름옷은 가져다 드리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반년만에, 여름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자식들의 앨범도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 그분들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 자식들과, 손주들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받은 성적표와 상장과 임명장이 들어있는 박스들도 나왔다. 부모님들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계셨다.
평생 사치라고는 모르셨던 두 분은 시계와 반지 몇 개와 목걸이를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 시계는 큰오빠가 오면 주려고 챙겼다. 엄마 액세서리는 올케 언니에게 주니, 언니가 반지 하나는 내가 끼는 게 좋겠다고 도로 주셨다. 엄마가 자주 끼던 비취반지를 엄마 생각날 때 가끔씩 끼어본다.
지갑과 신분증, 해외여행 때 쓰시던 여권과 아버지의 일기노트도 있었다.
엄마의 부엌살림을 치울때도 마음이 힘들었다. 낡았지만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음식을 해주셨던 식기들인 것이다.
심지어 엄마가 평소에 낡은 수건을 쓰면서 새 수건을 서랍에 고이 넣어두신 것을 발견했다. 아까워서 내가 가져왔으나 볼 때마다 울컥하게되어 나도 쓰지 못하고 넣어놓고 있다.
사시던 집을 빨리 세놓아야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빼고, 덩치가 커서 가져오지 못할 것들은 결국 업체에 맡겨서 통째로 처분해야 했다. 수십 년간 부모님과 동고동락하던 물건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엄마는 내가 요양원에 면회 갈때마다 살림들을 어떻게 했냐고 물으셨고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엄마에게는 그물건들이 당신 자체였고, 언제고 다시 집에 돌아오셔서 그것들을 쓸수 있을거라고믿고계셨는데차마 그것들을 버렸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집을 정리하고 물건을 버린것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다.물건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정리할 충분한 시간이 없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결국 그냥 물건일 뿐이다. 정작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부모님을 케어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져서, 결국 부모님을내가 끝까지 보살펴드리지 못하고 요양원에 가시게 한 것이었다.
부모님이 요양원에 가시고, 동시에 두 분의 물건들도 정리하면서 느낀 자괴감과 죄책감은 그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물건은 버렸지만, 살아계신 동안 부모님을진심으로 사랑했고, 돌아가셨어도 두분의 존재와 영혼은 영원히 내 마음에 저장했다고스스로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