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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May 22. 2023

가시에 대한 생각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던 큰오빠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

오빠와 나는 띠 동갑으로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오빠는 대학생이었다. 까마득한 나이 차에, 아버지보다도 엄격해서 어릴 때는 오빠는 그저 크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러나 오빠는 막내 여동생이 귀엽다고 지갑에 내 사진을 넣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보여주기도 하고, 유치원 다니던 나를 데리고 신촌의 오빠가 다니던 대학 근처에 데리고 가서 처음으로 오므라이스도 사주었다. 그때 케첩을 처음 보고 이상해서 잘 먹지도 못했다.

     

그 멋지던 오빠가 이제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라 한국에 와도 나 말고는 오빠의 식성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오빠가 유난히 봄나물을 좋아했던 기억이 나서, 우리 집에 잠시 머무는 동안 다른 건 몰라도 미국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인 봄나물을 많이 해서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덕은 옛날처럼 향기가 진하지도 않고, 껍질 까기도 번거롭고, 아파트에서는 소음이 신경 쓰여서 방망이로 두드리지도 못하지만, 형편 되는대로 껍질을 깐 것으로 넉넉히 사서 그냥 어슷하게 썰어 고추장과 유자청을 넣어 향긋하게 양념했다.

미나리는 생새우와 섞어서 튀김가루를 조금만 넣고 주재료를 위주로 하여 기름을 많이 넣고 튀기듯이 전을 부쳐서 초간장과 곁들이니 향긋하고 맛있었다.

오빠가 진짜 좋아하는 두릅도 슈퍼에서 파는 작은 용량으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코스트코에 가서 대용량으로 구입했다.

그것을 다듬는데, 가시가 만만치 않다. 줄기뿐 아니라 잎사귀에도 작은 가시가 엄청 많았다.

그냥 데치면 깔끄러워서 먹기 힘들 것 같아서 과도를 직각으로 해서 일일이 가시를 긁어내었다. 양이 많아서 시간이 꽤 소요되는 일이었다.

부드러워지라고 평소보다 긴 시간을 데쳐서 찬물에 헹구어 초장을 곁들이니 예상대로 오빠가 좋아하며 잘 드신다.

    

두릅을 다듬으며 가시의 저항감을 제대로 느꼈다. 몇군데 찔려 손가락에 피가 나기도 했다.

어떤 생물이 존재할 때 먹히려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크고 단단한 가시는 아니지만 두릅의 가시는 존재감을 뿜으며 그냥 먹히지는 않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막 깎은 잔디에서 나는 냄새는 향기라기보다는 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내뿜는 화학물질의 냄새인  것처럼, 식물도 자신의 존재를 없애려는 적에게는 무언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 같다.

포식자의 입장에서 보면 약하고 미미한 존재이지만, 당사자로서는 유일한 삶이고 자신을 보호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는 하나 있어야 할 것이다. 두릅에게는 가시가 그들을 보호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보통 가시하면 선인장이나 장미가 떠오르는데 선인장의 가시는 얼핏 보아도 범접할 수 없는 크기로 포식자들을 물러가게 만든다. 장미는 너무 아름다워서 꺾으려 하다가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경험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유명한 어린 왕자의 행성에 있는 아름다운 장미가 가진 가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걱정하는 어린 왕자에게 장미는 작지만 소중한 가시를 보여주며 자기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하지만, 누가 보아도 그 정도의 가시로는 세상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고깔을 씌워 보호해 주고 떠나지만 결국 어린 왕자는 장미를 지키기 위해 자기의 행성으로 돌아간다.

    

사람들도 자기 안에 크고 작은 가시를 품고 산다. 편안할 때는 보이지 않던 가시가 누군가의 공격으로 존재가 위험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튀어나온다. 누군가가 자신을 폄훼하거나 존재 이유를 부정할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무기로 쓰게 된다.

누구도 사랑을 핑계로, 혹은 잘났다는 이유로, 남에게 평가 잣대를 들이대며 공격할 자격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시가 튀어나오지 않게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 작은 가시가 그사람 충분히 보호할 수 없을것 같으면, 어린 왕자처럼 다가가서 고깔을 씌워주며 티 나지 않게 그를 도와야 할 것이다.


사랑으로 가시를 제거하면 쌉싸름의 두릅을 즐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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