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나쁜 의미에서는 ‘벽’이고 중립적인 의미에서는 ‘습관’이다.
어릴 때는 습관이 영향을 크게 끼치지는 않는다. 몸과 마음도 탄력적이고 버릇도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다르다. 긴 시간 동안 같은 행동을 하면 몸과 마음이 그쪽으로 굳는다.
나의 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신체적 이상은 무지외반증이다. 화장이나 옷 같은 외적인 단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나는 높은 구두만은 포기하지 못했었다. 보통 키였지만 높은 신발을 신으면 비율도 좋아 보이고 내가 늘씬해 보인다는 착각이 들었고, 남들은 신는데 나만 안 신으면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 손해 보는 것 같았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수십 년간 발을 혹사한 결과, 발이 복수를 한다. 튀어나온 부분이 신발에 닿기라도 하면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파서 이제는 굽이 낮고 볼이 넓은 신 이외에는 신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만나는 자리의 특성상, 정장 구두를 신어야 하는 날은 억지로 신고 나갔다가 거의 울면서 절뚝거리며 들어올 때도 많다. 휜 엄지발가락을 교정해 준다는 의료기구를 사서 착용해 보지만, 이론적으로 볼 때 높은 굽으로 수십 년 동안 변형시킨 발가락을 되돌리려면 보정 기구로 똑같은 긴 시간 동안 반대쪽으로 힘을 가해야 할 것이니 교정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온 나쁜 자세도 문제이다. 사춘기 때부터 구부리고 다녔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구부리고 책상에 앉아있었던 시간도 길어서 가슴을 편 당당한 자세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결국은 어깨에도 문제가 생겨서 고생을 했다. 이것도 이제야 반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남이 보면 과장되어 보이고 우스워 보일 것이다.
앉아있는 자세도 나중에는 문제를 일으켰다. 나는 앉으면 자동으로 다리를 꼬는 버릇이 있다. 수십 년이 지나니까 하지 정맥류도 생겼고 몸의 좌우가 살짝 비대칭으로 느껴진다. 요즘에는 다리를 꼬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틀어진 자세를 바로잡는 방법으로 번갈아 가며 한 발을 들고 나머지 발로 지탱하는 체조를 하고 있다.
신체적인 습관 이외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가정에서 허드렛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강박에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책을 보는 습관이 있었으나 나이가 드니 눈이 나빠지고 다음날의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졌다. 결국 제일 컨디션이 좋은 아침과 오전에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그 뒤에 집안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순서를 바꾸었다. 가장 중요하고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글쓰기와 책 읽기, 영화 보기를 우선순위로 놓고 먼저 하고 나머지는 형편 닿는 대로 하고 있다.
습관과는 별개로 누구에게나 작용하는 중립적인 영향으로는 중력이 있다. 내가 지구에 존재하는 한 언제나 작용하는 중력의 영향으로 모든 것이 아래 방향으로 처진다. 입꼬리, 눈꼬리, 피부가 처진다. 또 생리적인 노화로 인한 노안과 주름이 생기는데 모두 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작은 글씨를 잘 보기 위해 돋보기는 쓰지만, 주름을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 되돌릴 생각은 없다.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관심 밖의 일이다. 평소 짓는 표정대로 주름이 만들어질 테니 사람의 주름이 그 사람의 인생을 보여줄 것이다.
영화 ‘컨택트’(Arrival)에서 언어학자인 여자 주인공은 외계인의 언어를 연구하다가 과거로부터 미래로 한 방향으로 나가는 선형적 시간과는 다른, 자신의 생을 과거 현재 미래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원형적 닫힌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미래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잃게 된다는 것까지 알고서도, 그녀는 지금 그 남자와의 사랑을 시작한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인 것이다.
과거의 행동이 나에게 나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다르게 살았을까? 그러나 그 당시의 내가 미래를 예상했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현재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래의 건강한 발을 위해 젊은 날에도 높은 구두를 신지 않았거나, 다리를 꼬지 않고 의자에 앉거나, 눈을 위해 밤늦게 책을 읽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