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기서의 미래는 어떤 특정 시점의 특정 사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신화의 예언자나 점장이들도 예언의 내용이 구체적이거나 시기를 특정하지 않지만그들의 목적은 고객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돈을 뜯어내는것이고 신탁이나 점괘는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내용이 애매하고 모호해서 어디에나 걸어서 설명할수 있기때문에 자신의 오류를 감출수 있다.
오히려 내가 여기서 말하는'미래를보는 사람들'은 자명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엔칸토’에서 마을 사람들이 미래를 본다고 무서워하는 브루노 삼촌은 어떤 사람이 나중에 배가 나올 것이라거나 대머리가 될 거라는 그저 일반적인 노화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되자 그가 미래를 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는 매우 과학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체계화해서 예측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자들은 진정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구인들이 탄소 배출을 계속 많이 하면 미래의 기후가 변화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성실하게 인생을 살고 중년을 넘어서며 가지게된 통찰이 자신의 미래를 보게 해주기도 한다.
영화 ‘컨택트’에서 여자 주인공이 외계생물에게서 새로운 언어체계를 배우면서 미래까지 아우르는 인생을 통째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미래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밝지 않아도 그것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것도 나에게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며 열심히 살다 보면, 어떤 지점에서 자신에 대한 큰 그림과 방향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자기 인생의 전체 그림을 파악한 사람은 갈림길앞의 선택에서 거침이 없다.
점잇기는 인생과 비슷하다. 점 잇기를 하다 보면 초기에는 전체 그림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상을 잇다 보면 아직 끝나지 않았어도 그 그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경험이 많아서 그림의 정보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두 번째는 정체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점이 충분히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그림에서 점을 반 정도 연결하면 그것이 날렵한 물고기라는 것 정도는 예측이 가능하다. 평소에 상어에 대한 지식을 가졌다면 조금 더 그렸을 때 정체를 맞출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보려면 인생을 성실히 살면서 통찰을 얻고,또한 어느 정도의 나이를 지나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어린아이들의 점 잇기 그림은 점도 많지 않고 주변의 친숙한 물건이나 동물에다가 보조적인 그림 힌트까지 주어야 하지만, 성인들은 이미 선제 지식이 있어서 더 많고 복잡한 점도 쉽게 잇고 완성 전에 정체를 파악한다.
즉, 지혜롭게 나이 든 사람들은 중간 이상으로 완성된 그림의 정체와 완성될 미래를 볼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미래는 죽음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업’의 백미는, 오프닝에서 같이 나이 들으며 늙어간 부부 칼과 엘리의 일생을 아름답게 축약해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영화는 나의 인생도 짧은 필름으로 줄인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평생 사랑했던 엘리가 죽고 칼은 그녀의 빈자리를 보며 슬픔을 삼킨다. 나도 눈물을 흘리며 함께 상실을 느꼈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뿐 아니라 실제에서도 모든 생물은 일정 시간을 살고 세상을 뜨는게 확실하니 자신의 인생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닥치는 죽음을 안 본 척, 못 본 척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배우자도 가족도 친구도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나 예술작품을 통해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면서 칼이 느낀 엘리가 세상을 뜨고 난 후의 빈 침대 옆자리나 빈 식탁 앞자리의 허전함을 우리도 미리 느껴볼 수 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어떤 일로 먼저 세상을 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먼저 떠날 것이고, 남겨진 자가 있을 것이고, 그들이 느낄 상실감과 허전함이 클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원한 허전함은 옆자리의 배우자나 친구가 한 사소한 실수들을 덮고도 남을만한 크기이다. 만일 아직 상대방은 철이 덜 들어 아직 그것을 못 깨달을 시점이라고 해도, 나중에 남을 자 또는 떠날자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들도 결국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이가 들면서,현재의 힘든 점에연연하지않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정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