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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Sep 07. 2023

천사를 보았다

타인의 친절과 호의 받아들이기

     

과거에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었다.

가능하면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어릴 때는 이런 마음을, 인간은 독립을 추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장점으로 여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서 미숙하기도 했었고, 그때까지 편안한 환경에서 별 일이 없었으니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각하는 오만이었을 뿐이다.

 

아무튼 직장을 다니며 연년생 아들을 키울 때도 부모님에게 아이들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 아이는 내 힘으로 키우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힘들어서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그때는 못느꼈지만 나중에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내가 전적으로 보살펴 드려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나도 몰랐던 숨겨진 서운함이 폭발하였다. 열심히 도와드려도 만족하지 못하시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요구를 하실 때, 아이들도 안 봐주시더니 나에게는 왜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실까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 것이다.

어쩌면 나의 부모님은 손주의 육아가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노년을 즐기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혹은 평소에 개인주의자인 나를 보았을 때 내가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고 싶어해서 자신들의 도움을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고 개입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모두 내 생각이다. 실제로 나는 육아를 부탁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거절한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커리어가 끊기고 바쁜 기간도 지나가자 심한 우울감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올라온 것이다.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휴직을 해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내가 키우고 이후 한 3년 부모님께 육아를 부탁드렸다면, 나는 계속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서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중에 부모님께미안하고 고마워서 더 기꺼이 돌봐드리지 않았을까? 도움받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는 오만과, 내 경계를 지키고 싶었던 개인주의와, 솔직하지 못했던 마음이 내 인생을 결정지었던 것 같다.

    

한편 이렇게 미련은 남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었던 상황도 있는 반면, 어떤 때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의 안식년으로 아이들과 캐나다에서 살 때 급성 맹장염에 걸린적이 있었다. 남편은 볼일이 있어서 한국에 있었던 시기여서, 아이들과 나만 있었는데, 새벽부터 아프기 시작한 배가 오전에는 더 아파왔다. 겨우 차를 끌고 동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방광염 진단을 했다. 나는 나의 평생 고질병이었던 방광염의 증상을 잘 안다. 그래서 그런 종류의 통증이 아니라고 의사에게 계속 말했지만, 그는 무시하고 방광염 항생제를 처방했고 할 수 없이 그 약을 복용했는데 당연히 낫지 않았고, 나중에는 구토까지 나며 더 아팠다. 결국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판단을 하였고, 교회에서 친해진 이민 온 친구들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친구들이 와서 나를 종합병원 응급실로 데려갔고, 캐나다 병원 응급실은 위중한 순서가 아니라 선착순이어서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는데, 너무 아파서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될 정도가 되었다. 친구들이 저녁이 다 되어 내 순서가 될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고 입원 수속까지 도맡아 해 주어서 입원할 수 있게 되었고 다음날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뒤에도 입원했을 때 어린 아들들을 케어해 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회복할 때까지 돌보아준 친구들을 잊지 못한다. 신이 많은 사람을 돌보지 못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처럼, 신이 사람을 직접 돌보라고 천사를 파견했다면 이 친구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오만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니, 주시는 도움을 겸손하게 감사히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세상에 천사가 있어도 볼 수 없는 상태였는데,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니 그제서야 겸허한 눈으로 천사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라야 손 모으고 기도를 한다. 특정 종교의 방식이 아니라 옛날 엄마들이 장독대에 맑은 물 한 사발 떠 놓고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누구나 그럴 때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욕망을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바르게 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릴 것이다.

얼마 전 가족이 건강 검진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해서 조직 검사를 했을 때에도 나는 무력감을 심하게 느꼈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왔지만 결과를 듣는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종교를 가지지 않으니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었다. 동네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지만, 신도가 아니니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이 아니다. 그 성당 뒷마당에 소박한 성모상이 있는 것을 지나갈 때마다 보면서 관심을 가졌었는데, 갑자기 그 조각상을 보면서 기도하고 싶어졌다. 나는 아들을 잃고 죽은 아들을 무릎에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마음이 종교의 터전이라고 생각한다. 종파를 막론하고 그런 기도가 진짜 기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밤에 마리아상 앞으로 달려가 그 앞에서 진솔한 기도를 드렸었다.

    

이제는 이렇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서, 간절하게 기도도 하고, 겸손하게 친구들과 사랑뿐 아니라 도움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천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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