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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n 08. 2023

귀신 이야기? 아니고, 이별 이야기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

     

어린 아이를 두고 사고로 세상을 뜬 엄마를 생각하면 그 처연한 마음이 상상되어 저절로 가슴이 아프다. 주변의 가족들도 그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게 된다. 아이에게는 슬픔을 주지 않으려고 애써 죽은 엄마를 언급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막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삭의 젊은 여자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간다.

여자가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의사인 남편은 다른 사람의 수술을 하느라 사고를 알지도 못했고, 여자는 아기를 살리는 쪽을 선택하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다.

남편은 괴로워하며 다시는 수술실에서 집도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같은 병원에 근무하던, 자신의 갓난아기를 연민으로 안아준 간호사와 재혼했으나 새 아내에게 잘해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을 열지는 못한다.

태어난 딸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극진히 보살피지만 남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귀신)를 본다.

딸을 잃은 뒤 친정엄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이 걱정되어 이승을 떠나지 못한 여자는 귀신이 되어 이들 주변에 5년이나 머물다가 자신의 어린 딸이 귀신을 보는 상황에 분노해 신을 원망한다. 이를 가엽게 여긴 신이 여자에게 49일의 환생 기회를 게 된다.

49일 동안 아이를 비롯한 자신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과의 충분한 시간을 가진 여자는, 사고로 다쳤을 때 아이를 살리고 떠나는 것을 선택했던 것처럼, 딸을 위해 자신이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쪽을 선택한다.


     

다섯 살 여자 아이의 입장에서 주변을 둘러보자.

아빠는 자기를 바라볼 때마다 슬픈 눈을 하고 있다.

(새)엄마는 늘 우울하게 한숨지으며 무기력하고 불행해  보인다.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은 자기만 보면 이상하게 수군거린다.

같은 어린이집 친구의 부모이기도 한 아빠 친구 부부도 유난히 친절하게 자기를 보살펴 준다.

놀이터에 가면 모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참 동안 자기를 바라보다 가고는 한다.

모두 자기를 통해 다른 사람(죽은 엄마)을 본다.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

이 상황은 너무도 비정상적이다. 이 아이가 심리적으로 제대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 뻔하다. 드라마에서는 아이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아이가 귀신을 보는 것으로 표현한다.

어른들은 완벽하게 감췄다고 착각하지만 그들 마음 깊이 꼭꼭 숨겨둔 어떤 존재가 튀어나와 아이에게 자신을 알린다.

     

재혼 부부 입장에서 살펴보자.

갑자기 아내를 사고로 잃은 남편은 착한 여자와 다시 결혼하지만 죽은 아내와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딸을 볼 때마다 전 아내 생각이 나고 지금 아내와의 재혼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현재의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전처와 꼭 닮은 의붓딸을 보면서 전처의 존재를 느끼고 남편도 아직도 죽은 아내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행하다. 따라서 그녀는 진짜 가족이 되지못하고 겉돈다.

결국 그녀는 세 사람이 결혼한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결혼 생활을 전 아내가 항상 바라보고 있는 것 처럼 느낀다.

     

죽은 여자의 부모, 특히 엄마는 황망하게 사고로 죽어서 아기도 안아 보지 못하고 미역국 한번 못 먹고 떠난 딸을 잊을 수가 없다. 사위의 재혼 생활에 방해될까 봐 딸의 혈육인 손녀도 제대로 볼 기회가 없다. 반쯤 정신이 나가 몰래 놀이터에 가서 손녀를 훔쳐보거나, 매일 절에 가서 딸을 위해 기도하며 지내고 있다.

가장 친하던 친구는 친구가 남긴 딸을 잘 보살펴주는 것이 그나마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이에게 과도하게 관심을 보인다.

      

죽은 여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느라, 죽은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아이에게 친엄마의 사진을 보여주기는커녕 엄마 이야기조차 절대 하지 않는다. 모두 마음 깊은 곳에 그리움을 꼭꼭 눌러두고 일상을 살아간다.

결국 곪아서 터져 나온 문제가 어린 딸이 귀신 보는 증상과 재혼 부부의 이혼 위기이다.

숨기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결국 죽은 여자는 남은 자들에 의해 마음 밖으로 불려 나온다. 드라마에서는 환생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갑자기 떠나서 제대로 이별도 못한 존재와 충분한 시간(드라마에서는 49일)을 갖고 대화해야 한다. 어른들이 황망하게 떠나보낸 존재를 불러낸 다음 제대로 이별해서 그리움, 미안함, 죄책감, 무력감에서 해방되면 아이의 증상은 저절로 없어지고 재혼 부부의 위기도 해결된다. 친정 부모도 손녀와 사위를 공식적으로 보면서 딸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상실감에 빠진 상태에서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는 귀신의 환생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은 자들이, 마음에 그 존재를 불러내어 제대로 이별하는 이야기이다.

한 번도 엄마를 못 본 아이에게 엄마를 불러와서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일단 만나야 헤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안녕 엄마, 잘가 엄마.

하이 마마, 바이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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