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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n 26. 2023

요리의 마지막 한 끗

토마토 마리네이드

도시의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 시골로 내려와서 직접 수확한 작물로 소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사는 생활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재미있게 보았었다. 원작인 일본판에서 자기도 생을 즐기겠다며 고등학생 딸을 놔두고 떠나버린 엄마를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주인공이 4계절 해 먹는 소소한 음식들을 만드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요리 솜씨가 좋았던 엄마와 비슷한 수준의 맛을 구현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물 요리만은 과거 엄마가 해준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민해 본 결과, 그것은 양념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 손질의 문제였다. 연한 잎을 먹는 나물은 상관없지만 시골의 밭에서 딴 채소들은 줄기를 먹는 경우도 많은데 초기에 여릴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줄기가 굵어져서 질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그냥 조리하면 섬유질이 너무 서 식감이 좋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양념이 속까지 배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잘 생각해 보니 그녀의 엄마는 항상 줄기의 껍질을 까서 조리했었다. 자신도 그렇게 하니 엄마가 해주던 그 맛있는 나물이 되었다.

     

나도 주부 경력이 꽤 길어지다 보니 셀러리를 먹을 때 껍질의 섬유질을 벗기는 정도의 기본은 한다. 그러나 아직도 친정엄마처럼 고구마 줄기를 사다가 일일이 껍질을 벗기는 것은 엄두도 안 낸다. 남이 해준 고구마 줄기 볶음은 아주 좋아하지만,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나물 한 가지를 하는 것은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면 가족들이 감탄할 수 있는 근사한 요리 한 가지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물은 나만 좋아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해산물도 다듬는 게 만만치 않다. 새우도 귀찮아서 그냥 요리하면 무언가 불편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새우 등 쪽에 내장이 있는데 그것을 이쑤시개로 일일이 빼내야 깔끔한 요리가 된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시간이 없으면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냉동 새우를 사용하면 된다.

또 그는 서해안 명물인 맛조개를 정말 좋아한다. 초기에는 눈치도 없이 껍질이 있는 맛조개를 나에게 내밀었다가 눈총을 맞고, 이제는 눈치껏 시장 할머니가 친절하게 까서 주시는 맛조개를 사 온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해감을 하고 껍질을 까서 사 와도 조갯살 둘레의 검은 부분을 제거해야 깔끔한 조개 맛을 볼 수 있다. 그래도 갯벌에서 조개를 캐서, 하루 이상 해감을 하고, 껍질을 벗기는 수고를 건너뛸 수 있으니 감사하게 받아서 요리를 한다. 데쳐서 초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고, 호박과 두부를 넣고 맛조개 고추장찌개를 해서 먹으면 국물이  달큰하니 아주 맛있다.

     

결국 맛있는 요리를 하려면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잘 다듬는 작업이 필수이다. 이 번거로운 작업을 다른 말로 하면 ‘정성’이다. 귀찮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니 기꺼이 시간을 들여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요리의 비법은 미원이 아니라 정성이다.


최근에 가족의 건강을 위해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을 주재료로 하는 마리네이드 토마토를 만들어서 먹었다. 주재료는 아니지만 들어갔을 때 전문가의 향기를 풍기는 허브가 없을때는 만들기를 망설이는데, 주택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는 예쁜 내 친구가 민트 잎을 따다가 주어서 당장 만들었다. (바질도 좋고 민트도 괜찮다.)

토마토가 좋은 식재료인 것을 모두 알지만 껍질의 식감이 불편할 수도 있고 껍질이 있으면 양념이 속까지 배지 않게 되는 문제가 있다. 역시 번거롭지만 껍질을 벗기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방울토마토로 하면 한입에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작은 방울토마토는 껍질 벗기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그래서 내가 타협한 것은 방울토마토일 경우 껍질을 벗기지 않고 반을 잘라서 만들고, 중간 사이즈의 토마토의 경우 껍질을 벗겨서 마리네이드 하는 것이다. 토마토는 익을수록 흡수도 잘되고 껍질이 없으면 부드러운 식감이어서 많이 먹을 수 있다. 열십자로 칼집을 내고 끓는 물에 데치면 쉽게 껍질이 벗겨진다. 물론 번거롭지만, 가족이 즐겁게 먹는 생각을 하면 감수할 만할 정도다.

     



-중간 사이즈의 토마토 한팩을 잘 닦아서 꼭지를 반대편에 열십자로 칼집을 넣는다.

-끓는 물에 30초쯤 데친 후 찬물에 잠깐 담근다.

-토마토의 껍질을 깐다.

-양파 1/4개, 레몬 1/4개, 민트잎 5개를 다진다.(생 허브가 없으면 파슬리 가루나 바질 가루를 넣어도 된다.)

-올리브 오일 4큰술, 발사믹 비네거 2큰술, 레몬 반개를 짠 레몬즙, 유자청 2큰술, 소금 1작은술, 후추 약간을 넣고, 다진 재료를 넣은 다음 잘 섞는다.(생레몬이 없으면 시판 레몬즙 2큰술, 유자청 대신 매실청이나 꿀을 넣어도 된다.)

-껍질을 깐 토마토를 양념과 섞고 용기에 넣고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해서 먹는다.

-방울토마토는 그냥 먹으면 되고, 큰 토마토는 먹기 전 한입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놓고 양념 국물을 붓고 허브잎 몇 개를 위에 올린 후 맛있게 먹는다.


*양념 국물을 샐러드 드레싱으로 써도 되고, 물김치처럼 토마토를 양념 국물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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